모래놀이상담에서 상담의 관계는 내담자와 상담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내담자와 모래놀이상자, 상담자와 상자작품의 관계를 모두 포함한다(Okada, 1984). Okada(1984)는 모래놀이상담의 이러한 다면적인 상호작용을 ‘모래놀이 삼각관계(Sand Play Triangle)’라고 정의하고, 모래놀이 상담이 가진 상담관계의 다면적 상호작용과 역동성을 설명한다.
전이와 역전이의 문제는 Freud(1916~1917/2016)에 의해 제시된 이후 심리학의 중요한 연구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모래놀이상담은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의 전이와 역전이의 문제와 함께 모래놀이 상자와 작품(Sand Picture)이라는 제 3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본 연구는 모래놀이상담에서 전이와 역전이에 대한 선행연구를 알아보고,‘내담자, 상담자, 작품’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이와 역전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Freud(1916~1917/2016)는 상담장면에서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보이는 특이한 관심에 주목하였다. 상담의 초기 단계에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한 사람으로서 감정들을 전이하게 된다. 내담자는 상냥하고, 세련되게 행동하고, 상담의 내용을 진지하게 수용하고, 자신의 통찰과 해석을 통해 상담자를 놀라게 만들기도 하는 등 상담관계의 탁월한 진전을 보여준다. 그러나 ‘좋은 날씨’가 계속되지 않고 ‘궂은 날씨’가 오기 시작한다. 내담자는 자신에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상담을 받고 있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Freud, 1916~1917/2016). 그는 상담장면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전이는 상담관계를 추진하는 힘으로 작용하므로, 전이야 말로 치료의 수단이라고 보았다.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역전이라고 한다. Freud(1916~1917/2016)는 상담자의 마음을 빈 화면처럼 오염되지 않은 하나의 도구(instrument)로 생각하여, 역전이를 상담과정의 방해요소 혹은 부정적 영향을 주는 방해물로 보았다.
하지만 Klein(1946)은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가지는 모든 감정을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Racker(2007)는 내담자가 자아의 일부를 상담자에게 투사하고, 상담자가 이것을 내사하여 동일시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내담자가 느끼는 슬픔, 두려움, 분노 등의 감정을 경험하며 이를 공감하게 되는 과정을 역전이의 긍정적 기능으로 보았다. 한편 내담자는 부모라든가, 애인 등 초기 중요한 대상을 상담자에게 투사하는데, 이 때 상담자는 스스로 그 부모와 동일시하여 마치 부모처럼 느끼고 행동하는 역전이를 통해 내담자가 느끼는 정서와 감정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데 이것은 ‘공감’혹은‘정상적 역전이’라 할 수 있다(Racker, 2007).
Jung(1945/2004)은 전이를 설명하기 위해 연금술의 상징적 그림을 길잡이로 소개하였다(그림 1).
그림 1은 연금술의 그림을 Jung(1945/2014)이 도식화한 것으로 한 사람의 무의식에서 다른 사람의 의식으로 교차하는 전이 관계를 보여 준다. 그는 연금술에서 남성의 여성적인 측면인 아니마(anima)와 여성의 남성적인 측면인 아니무스(amimus)라는 이성(異性)적 무의식의 교차와 이 대극의 융합이라는 특성을 통해 전이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전이 현상은 본래 부모나 가족에게 투사된 근친상간적 측면이나, 성애(性愛, eros)적 측면처럼 치료자와 내담자 모두에게 다루기 어렵고, 정감적인 부담을 주는 내용이 존재한다. Jung은 전이 현상의 어렵고 까다로운 과제를 연금술의 상징 내용에 의지해서 설명하였는데, 연금술의 상징적 드라마는 모래놀이 상담의 치료적 관계에서 전이 현상을 설명하는데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이부영(2001)은 내담자의 긍정적 전이는 상담자의 긍정적 역전이를 부르고, 첫 면접에서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자기의 아니마상을 볼 수도 있는데, 이러한 역전이의 가능성이 상담 관계에 해롭다기보다 이것을 인식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살펴본 바와 같이 전이와 역전이의 문제는 심리학을 통해 중요하게 연구되어왔다. 마찬가지로 모래놀이 상담에서 전이와 역전이는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Lowenfeld(1931)는 상담실에서 상담자들의 개인적인 차이점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였다. 상담자는 모두 비슷한 복장을 입고, 아동들을 따라다니고, 상담자의 머리 높이를 아동의 머리 높이에 맞추도록 훈련을 받았다. 또한, 아동을 맡는 상담자를 자주 바꾸어 전이의 요인을 최소로 줄였다. 그녀는 아동과 상담자의 전이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아동과 상자작품의 전이를 통해 아동이 스스로 만든 상자작품을 직접 대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Kalff (1991)는 상담자가‘자유롭고 보호된 공간’을 제공한다면 긍정적 전이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또한, Kalff (1993)은 내담자와 상담자의 관계가 때때로 상자작품에 나타나거나, 내담자가 선택한 장난감(Miniature)은 내담자가 느끼는 상담자에 대한 감정의 표현일 수 있다고 보았다. Mitchell과 Friedman(2016)은 내담자가 너무 쉽게 상자를 꾸미거나 거부할 때, 작품을 솔직하게 말하거나 혹은 상담자의 시야에서 감출 때, 혹은 상담자가 모은 Miniature를 흠잡거나 칭찬하는 등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경우 전이를 암시한다고 하였다.
Weinrib(2004)는 모래 상자가 Winnicott이 말한 중간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모래 상자가 독립적인 대상이 되면 전이는 상담자에서 모래 상자로 부분적으로 이동한다. 따라서 전이는 상담자와 모래 상자 양쪽에서 일어난다. Kawai(2013)는 상담자를 공격하거나 연애감정으로 표현될 수 있는 ‘강한 전이’와 깊은 인간관계에 기초하여 비언어적, 비(非)행위적으로 체험되는‘깊은 전이’를 구별한다. 직접적인 강한 전이는 눈에 쉽게 보이고, 극적이기에 상담자에게 자기만족을 줄 수 있는 것에 반해, 비언어적인 깊은 전이는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깊어질수록 마음의 에너지 양은 커지고, 그곳에 동반하는 감동은 무의식의 내용과 에너지의 움직임을 변환의 과정으로 유도하여 치료에 도움이 된다.
Okada(1984)는 내담자, 상담자, 작품이라는 3요소의 상호작용을‘모래놀이의 삼각관계(Sand Play Triangle)’를 통해 설명하였다.
그림 2는 Okada의 모래놀이의 삼각관계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a’는 내담자와 상담자의 상호관계와 작용이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모자일체성’의 환경을 만들어 주고 내담자는 상담자에 대한 여러 감정을 응석이나 거부 등의 긍정적 혹은 부정적 전이를 통해 표현한다. b,b’는 내담자와 작품의 작용이다. 내담자는 모래작품을 만들면서 트라우마, 심리적 고통, 부정적 정서 등을 상징을 통해 안전하게 표현하고 표출할 수 있다. 모래와 모래상자, 특히 상자의 테두리는 내담자에게 경계를 정해주고 또한 모자일체감을 제공하고, 내담자는 작품을 만들어 자기표현을 한다. c,c’는 상담자와 작품의 관계이다. 작품은 상담자의 무의식과 complex에 자극과 영향을 주고, 상담자는 상담자에 대한 인상이나 감정을 느끼며 해석하게 된다.
내담자와 작품의 작용인 b,b’는 Lowenfeld가 제시한 내담자와 작품 사이의 전이의 중요성을 도식적으로 보여주고, a,a’로 그려진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는 Kalff가 말하는 내담자와 상담자의 모자일체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상담자와 작품의 작용을 보여주는 c,c’의 그림 1을 통해 Kawai가 말하는 깊은 전이와‘아하’하는 비언어적 소통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모래놀이 상담에서 내담자와 작품 사이의 전이의 중요성과, 긍정적 전이의 문제 그리고 모래놀이 상담에서 전이와 역전이의 의미 등은 일부에서 연구되어왔다.
모래놀이 상담에서 전이와 역전이의 문제는 3요소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각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다각적인 상호작용을 특징으로 하는 모래 상담의 전이와 역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이고 균형 있는 관점이 중요하다.
본 론
사례 연구의 내담자(20XX년 14세)는 2녀의 둘째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다. 생활사와 가족관계는 내담자의 어머님 보고에 근거한다. 내담자는 3.2Kg 제왕절개로 건강하게 태어났고 말하기는 조금 빨랐다. 학교생활에서 내담자는 자신이 할 일은 알아서 잘 처리하였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하는 일에 믿음이 갔으며 특별히 따로 잔소리할 일이 없게 하였다. 단, 고집이 있고 하고 싶을 때만 일처리를 하는 성격으로 가끔 힘들게 하였지만 반듯한 아이였다.
내담자는 친구들 사이에서 밝고, 명랑한 성격에 예쁘장한 외모로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내담자 모의 보고에 의하면 중2가 되면서 우울감을 보이기 시작하고, 자신의 외모와 능력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여 상담에 의뢰되었다.
부는 49세로 7남 3녀 중 10째로 태어났고 대졸이며 종교는 불교이다. 시골에서 늦게 태어나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고, 가정환경이 어려워 힘들게 생활하였다. 스스로 자립하여 생활하는 강한 성격으로 사회생활은 원만하고 가족관계도 원만하다. 고집이 세고 매우 부지런하며 성실하고 정직하다. 스포츠는 좋아하지 않으며 활발한 성격은 아니고 내담자와 사이가 좋은 편이나 서로 표현은 부족하다.
모는 45세로 1남3녀 중 2째로 태어났고 대졸이며 종교는 불교이다.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랐고 원만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즐겁게 생활하였다. 고집이 세고 고지식하며 보수적인 성격이다. 자녀의 양육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고 하며, 내담자와의 관계는 좋은 편이다. 부 30세, 모 26세에 주변인의 소개로 혼인하였고, 보편적인 가정으로 생활하는데 큰 불화 없이 살아왔고 서로 편하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부부관계이다. 내담자의 언니는 18세, 대학교 1학년으로 활발하고 편안하며 깔끔하고 바른 편이다. 언니와 내담자는 평소 무척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는 상의를 잘하고, 각자의 생활을 존중한다.
본 연구의 사례는 내담자의 14세 (중학교 2학년 11월)부터 16세(고등학교 1학년 12월)까지 25개월간 총 24회기의 상담이 실시되었다. 상담은 1,2개월 사이에 1,2회씩 부정기적으로 진행되었고, 상담시간은 50분이었다. 본 연구에 앞서 미성년자인 내담자와 보호자에게 연구 내용 및 발표에 대하여 안내 후 사전 동의를 받았다. 또한 연구 윤리 기준을 준수하기 위하여, 연구자는 연구 윤리 교육을 이수하였고, 내담자의 정보와 비밀 보호를 위하여 민감한 내용을 제거하였다.
Client | Therapist | |
---|---|---|
Age | 14 | 39 |
Sex | female | male |
Counseling experience | First | First case |
Text | Sand | Dream |
Picture | Record | |
24 | 10 |
표 1은 내담자와 상담자의 기본적인 인적사항 비교이다. 상담자는 39세 남성으로 본인의 우울감으로 모래놀이상담, 꿈분석, 교육분석을 받았다. 모래놀이 이론교육을 받았고, 본 연구의 상담이 첫 사례이다. 본 사례 연구는 모래놀이 상담과정에서 나타나는 전이와 역전이의 작용을 내담자와 상담자의 상담장면, 내담자의 작품 그리고 상담자의 꿈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목적을 위해, 상담기간 동안 작성한 상담기록을 최대한 가감 없이 수록하였고, 작품에 대한 상담자의 해석은 최소화하였다. 또한, 상담 기간 동안 상담자에게 느껴진 내담자에 대한 인상이나 감정과 상담자가 꾼 꿈 가운데 상담 관계나 내담자를 연상하게 된 꿈을 함께 수록하였다.
내담자는 모래실에 들어와 긴장한 듯 주위를 둘러본다. 자리에 앉아 모래상자를 말없이 바라보고, 손바닥으로 젖은 모래를 쓰다듬는다. 입은 다물고 숨소리는 다소 거칠어진다. 잠시 조용한 침묵이 흐른다.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나 커다란 킹콩(우)을 가져오고, 공룡(좌)을 들고 온다. 거침없이 크고 작은 소품을 가져오는 모습이 마치 결심한 일을 해치우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인가와 대면하려는 사람처럼 매우 진지한 표정이다. 소품을 배열하는 동안 말없는 침묵 속에 내담자의 높고 낮아지는 숨결이 모래실에 울려진다.
킹콩이 겁을 주어서 야생세계(좌)를 몰아 내려하고 있다. 킹콩 아래의 주황색 포크레인이 있다. 포크레인 옆에 초록색 옷을 입은 40대의 남자(우하)가 도시를 건설하려는 사장이다. 그가 이 공사를 주관하고 있다. 킹콩 위에 초록색 청소부(우상)는 공사가 끝나면 청소를 할 것이다. 사장과 청소부 앞에 있는 두 개의 장승은 오른쪽과 왼쪽을 나누는 경계이고, 왼쪽 세계의 입구를 상징한다. 토템 폴(Totem pole)의 옆에 인디언 텐트가 세워져 있고, 텐트에 원시인 엄마는 모닥불에 고기를 구워 아들에게 먹이고 있다. 인디언들은 야생세계를 지키고, 도시 건설을 막기 위해 토템폴이 세워져 있는 입구까지 나왔다.
모래상자의 가장 왼쪽 가운데에 부엉이와 사슴은 야생세계의 지혜로운 노인들이다. 부엉이와 사슴 사이에 이 세계의 문명물인 피라미드가 있는데 지키고 있다. 피라미드는 숲의 거룩하고 신성한 것이다.
내담자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예쁘장한 외모를 지닌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다. 말수가 적고 질문에는 약간 툴툴거리며 짧게 대답을 하지만 정확하게 표현을 한다. 모래실에 들어와 말없이 앉아 있는 모습은 상담자를 살짝 긴장시켰다.‘이렇게 말없이 앉아만 있다면 상담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하는 걱정이 들 때‘쿵’하고 들어온 킹콩은 상담자를 순간 깜작 놀라게 한다. 질문에‘보면 모르나?, 그것도 모르나?’질책하듯이 퉁퉁거리는 말투로 대답하지만 그래도 정확하게 표현을 해주는 모습에 안심이 된다. 똑똑하고 다부져 보이는 인상에 침묵 속에서 툴툴거리는 말투는 상담자에게 호기심을 생기게 하는 호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긴장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상담자는 상담을 시작하기 열흘 전, 노인과 십대 소녀와 함께 이슬람식 회당에 들어가 침술 혹은 의학을 배우는 재미있는 꿈을 꾸었다. 예쁘장하고 다소곳한 꿈속의 소녀의 인상은 조용하고 말없는 내담자를 떠오르게 하였다.
흰 머리에 기괴해 해 보이는 한 노인과 십대에 예쁘장하고 다소곳해 보이는 한 여자 그리고 나는 이슬람의 회당(소피아 성당 같은 돔양식)처럼 보이기도 한데, 안쪽이 큰 법당처럼 생긴 큰 집에 들어간다. 그곳에 사람들이 여러 그룹으로 모여서 앉아 있다. 부처님이 계시는 본존불의 자리 같은 곳에 아마 이 모임 중에 가장 연장자인 더 큰 노인의 어떤 설법이나 강의를 들으려고 한다. 일행인 노인과 여자는 서로 흩어져서 둥글게 앉은 그룹으로 끼어든다. 더 큰 노인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룹에서 한 젊은이가 이야기 한다. 시작하기 전에 그냥 서로 담소를 나눈다. 레포트를 30줄이나 썼다는 둥 그런 내용이다. 그러는 사이 나는 일행 중에 있던 노인이 되고, 20대 젊은이와 말을 섞는다. 아마 수업에서 배울 내용들인 것 같은데 의학에 대한 것 혹은 침술이나 그런 내용들이다.
한달 만에 만났다. 상담자의 인사에도 별 반응이 없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들어온다.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볼 틈도 없이, 작심한듯 큰 트레일러(우)를 상자로 가져오고, 블록(하)으로 레일을 만든다. 모닥불(우상)을 놓고 나서, 차분히 앉아 모래(좌상)를 만져본다. 모래(좌상)를 이리저리 쓸어보다가 모으고 밀고 실랑이 벌이듯 하다가, 다시 일어서 이런저런 소품들을 구경하며 가져오기 시작한다. 모래언덕(좌상)에 물병, 손전등, 돌 자동차 같은 작은 소품을 꾹꾹 혹은 거칠게 심는다. 중장비로 들어올리는 장면을 꾸미기 위해 섬세하게 작업한다.
이곳은 폐차장이다. 폐차는 허무한 느낌이다. 게다가 이런 일은 돈도 못 벌고, 폼나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쓸모없는 자동차나 쓰레기를 묻어버리는 일을 누군가 해야만 한다. 어릴적 아빠 회사에 가서 지게차와 중장비를 보았을 때 신기했던 기억을 이야기하며, 상자에 지게차(상)를 타고 있는 5세 남자아이가“나”라고 한다. 아빠에 대한 질문에는 삼촌의 회사에서 일한다고 짧게 대답하고는, 모닥불을 피우는 청년(우상)이 갈퀴를 들고 불을 피우고 남은 쓰레기를 태우고 있고, 할머니(우)는 고물을 챙겨가고 있다고 말을 돌린다. 청년은 똑똑하지 않지만 착하다.
십대 여중생 쯤 보이는 소녀가 있다. 나는 이 소녀를 공부시켜야 하는데 소녀가 사용하지 않는 어떤 능력을 키우겠다는 것인지, 소녀를 더 공부시켜야 한다는 것인지 소녀와 같은 어떤 능력을 내 능력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내가 책을 펴고 공부하고 있는 장면이 보인다. 책이 아주 잘 읽힌다. 교실에 아이들이 있다. 먼지가 많은데 그것을 탁 탁 털어서 분위기를 바꾼다. 아이들과 먼지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공부를 한다.
지난 달 상담이 이루어지지 않아 2달만에 상담실에 오게 되었다. 다행히 상담실이 친숙해 졌는지 긴장한 듯한 분위기는 덜하다. 무엇인가 생각해 둔 장면이 있는지 화산(좌상)을 먼저 놓고 흐르듯이 꾸미기 시작한다. 배(ship, 우하)위에 밥, 물병 등 작은 소품을 올리는 섬세한 작업으로 마무리한다.
상담자에게 상자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설명해 준다. 화산이 터졌다. 미리 준비해 둔 배를 타고 피난을 가는 중이다. 동굴(좌하)안에 남자는 꺼벙한데 피난을 가지 않고 동굴에서 불 피우고 산다며 바보스러워 보이는 듯 재미있어한다. 경찰과 소방관은 화산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막고 있다. 박쥐 전갈(좌상)은 화산이 터지는 걸 알고 도망가고 있다.
초록색 군인들은 북한군이고 황토색 군인들은 남한군이다. 마을에 전투가 벌어져서, 마을 주민들은 장독대(하)에 숨거나, 항아리에 숨거나 집 뒤에 숨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을 간다. 북한군(우)이 마을로 밀고 들어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마을의 정자(중앙)에서 대치 중이다. 집 앞에 밥상이 엎어지고, 우물(우상) 옆에 마을 청년은 돈을 들고 도망가고 있다.
한 달을 주기로 진행되는 회기여서 상담을 시작할 때 서로 어색하게 감돌던 긴장은 많이 완화되었다. 내담자가 상자 꾸미기는 것을 좋아하여 열심히 제작하는 모습과 신나하며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모습에 상담자도 함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큰 알을 중앙에 놓고, 동그랗게 돌과 꽃을 놓는다. 큰 알(중앙)에서 아기코끼리가 탄생한다. 엄마, 아빠, 형 코끼리가 큰 알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지켜보고 있다. 우측 하단 영역에 불을 피우는 제단을 놓고, 부처, 석탑, 가네사(Ganesha) 신상을 그 앞에 놓는다. 이 영역은 코끼리에게 신성한 곳으로 사람으로 치면 교회 같은 곳이다. 태어나는 아기코끼리를 위해 향을 피우고 제물을 태우고 있다. 코끼리의 종교는 풍요를 기원하는 종교이다. 거북이와 개, 몽구스(우)가 선물가방에 케잌을 들고 축하하러 멀리서 왔다. 금 쟁반(좌)에 과일을 놓고 그 옆에 아기 요람(좌)을 준비한다. 아기 코기리가 먹을 첫 음식과 아기의 방이다. 만족스러운듯 상자를 감상하다가 성모자상(알의 옆)을 놓는다. 아기 코끼리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동상이다.
작품을 함께 감상한다. 중앙에 있는 알은 상담자에게 매우 인상적이고 강한 경이로움과 감사한 마음을 일어나게 한다. 큰 알의 모습에 탄생의 거룩함이 느껴진다고 말하니 매우 흡족해한다. 상담자에게 느껴진 이 감정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2년 전 이맘때 상담자의 둘째 딸이 태어났던 일이 문뜩 떠오른다. 경이로운 마음으로 내담자와 말없이 감상하였다.
자연스럽게 앉아 모래를 바구니에 반 이상 덜어내고, 파란 바닥을 넓힌다. 경주용 자동차(중앙)가 달린다. 인물들과 의자, 구급차 등이 차례로 상자의 테두리를 따라 들어온다. 가방을 든 소년(우하)이 “나”라고 하며, 인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횟집에서 일하는 주방장(좌상)은 미혼이고 횟집을 잘 운영한다. 그 옆에 구부정한 꺼벙이(좌상)는 컴퓨터 수리공이라서 정밀하지만, 자신감이 없다. 그 옆에 남자(좌상)는 감독인데 무뚝뚝하지만 책임감이 있다.
“어릴 적 수영장에 빠져서 허우적거려서 개인적으로 물이 많으면 무섭다. 바다를 보면 시원한 느낌이지만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척추측만이 진행되고 있는데 키가 크면서 악화되어 수술을 하지 않도록 치료를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많이 휘어서 펴지지 않는다.”라며 일상의 이야기를 잘한다. “요즘 갑자기 화가 날 때가 있다. 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유는 없다.”자동차 경주장의 모습이 상담자에게 시원하게 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스럽게 꾸미고 이야기하는 내담자의 모습은 상담자에게 좋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화가 나고 이유 없이 운다는 말에 상담자로서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가만히 듣고만 있게 된다.
---중략---
나는 어떤 50대 여류작가와 인터뷰를 합니다. 작가가 5년 동안 일본어 원서를 번역했습니다. 나는 5년간 번역하며 어려웠던 점, 번역을 결심한 동기, 책의 내용에 대한 소개 등을 물어 봅니다. 작가는 온화하고 다정하게 대답을 해 줍니다. 나는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핵심을 잡으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고등학교에 와 있습니다. 사춘기 소년처럼 들뜨는 감정입니다. 앞 자리에 예쁜 여학생이 앉아 있습니다. 첫사랑의 감정처럼 살짝 달뜨고 뭔가 고백을 해야겠습니다. 졸업여행을 제주도로 함께 가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마 프로포즈를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다들 식당으로 갑니다. 여학생의 옆자리에 앉아서 프로포즈를 해야 하는데 그만 쫒다가 놓쳐버렸습니다.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서 서로 먼저 식당으로 가려고 밀려가는데 나는 멍하니 바라만 봅니다. 생각해보니, 여학생은 우리 반이 아닙니다. 아마 다시는 못 볼 것 같습니다. 또 혹여 다시 만나 졸업여행을 간다 해도 그 아이는 여학생이지만 나는 이미 중년 아저씨가 되어 있습니다. 우린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가슴이 아리고 저며 옵니다.
회의실에서는 무슨 회의가 있습니다. 50-60대 남성들인데 지금은 큰 교회를 하는 상담자의 신학교 선배, 전국 장로협회 부회장이 되신 친구 아버지, 도교육위원이 되신 고등학교 은사님 등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분들인데 지금은 모두 천안에서 한 자리씩 하고 있습니다. 회의실로 여고생 세 명이 들어갑니다. 셋 다 천주교 학교 아이들이어서 적색 교복을 입고 있습니다. 회의실에 따라 들어가서 무슨 일인가? 봅니다.
큰 교회 목사님이 세 여고생에게 매주 1회씩 모래놀이 상담사로 와서 교회 고아원 아이들을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나는 여고생들이 할 수 있을까 의아합니다. 중략. 아까 회의실에 있던 60대 남성이 들어 와서 회의 결정된 내용을 무뚝뚝하게 전해 줍니다. 여학생 셋이 모래놀이 상담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다고.
젖은 모래를 선택한다. 팔을 걷고 가운데 모래를 모두 파서 옆으로 쌓는다. 한동안 모래언덕을 두드리고 다진다. 푯말(우하)을 놓고 소품을 잔뜩 가져다가 순식간에 꾸민다. 이곳은 공항이다. 먼 곳으로 여행을 간다. 비행기(좌하)는 수리 중이고 레미콘과 지게차는 공항을 확장 공사하는 중이다. 유럽 여행을 가보고 싶다.
작품을 열심히 만들었다. 하지만 피곤한지 물어도 대답이 없다. 우울해 보이기도 하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 모습은 상담자에게 걱정과 안쓰러움을 느끼게 한다.
-- 생략--
옆에 누워있던 노숙자 아주머니가(50-60대) 나를 보더니 그 옆에 있던 다른 노숙자 아주머니(30-40대)를 불러서 둘이 사귀라고 한다. 나는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고 사양한다. 한 시 반까지 여기 있어야 하니 그때까지 앉아서 아주머니를 붙잡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어 주고 대화를 시작합니다. - 그 노숙자 아주머니들과 하루 일 있으면서 이야기를 들어 주니, 이 아주머니들은 대화가 된다며 다른 노숙자 아주머니(?20-30대)를 불러낸다. 이제 세 명의 노숙자 아주머니가 되었다.
나는“왜 노숙을 하느냐? 사글셋방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집을 꾸리고 살지 않겠느냐? 사글세 정도는 식당일 같은 것 하면 되지 않겠느냐?” 등 사는 일을 묻는다. 또“노숙하는 것이 혹 방랑벽은 아니냐? 가족이 없더라도 함께 모여서 가족으로 서로 의지하며 정붙이면 되지 않느냐?” 등 사는 의미 등을 묻는다.
나이가 제일 많은 아주머니는 이제 적대감 없이 말하기 시작하고, 늦게 온 제일 젊은 새댁은 경계심을 풀고 말하기 시작한다. 또 나에게 부탁하기를 지역구 국회의원을 보거든 논에 모래를 놓고 그 옆에 나무로 배경을 하여 논 전체가 모래밭처럼 보이게 하는 아이디어를 말합니다. 지난번에 시청 높은 분에게 말해서 거의 될 뻔했는데 두 번째 아주머니가 속여서 무산되었다는 둥 뭐 그런 이야기를 한다. 가만히 들어보니 좋은 아이디어들이 참 많아 보인다.
나는 노숙자 아주머니들을 강제 수용하기 보다 자기들 서로서로 정 붙일 곳을 만들어 주고 그렇게 가족이 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한 시 반이 다 되었고, 난 자리를 일어나고 아주머니들도 떠납니다. 거리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할 수 있다면 이 아주머니들을 모래놀이상담사가 되게 해주면 가족도 되고 돌보는 상담사들이 될 것 같다.
여러 사정으로 6개월 동안 상담이 진행되지 못했다. 내담자는 한 달 후 사립여자고등학교에 진학할 예정이다. 반 년만에 상담이지만 다행히 어색해 하지 않는다. 젖은 모래를 만지고 한참 두드린다. 소품을 잔뜩 가져와 꾸미기 시작한다.
도시의 한 마을을 재개발하기 위해 주민들은 떠났다. 집도 부쉈다. 그런데 공사하는 사람들이 공사 장비를 놓고 떠나 버렸다. 경찰차(상)는 무슨 일인지 왜 공사를 하지 않고 있는지 보러 왔다. 남은 인부 몇 명만 삽질을 한다. 좌측 상단에 쓰레기 태우는 곳이다. 쓰레기장에 가스통(좌상)도 쓰다만 것인데 터지지는 않는다. 인부들이 놓고 간 공사 자재(좌하)가 있다. 초등소년(중앙)은 자신이 살던 마을이 폐허가 된 것을 보고 있다. 마음이 아프고 놀란다. 전기가 끊겨서 가로등(좌)도 안 들어오고 시계탑(좌)의 시계도 멈추었다. 마치 6개월간 멈춘 상담을 표현하는 것 같은 작품에 내담자도 허망하고 허탈한 느낌이 든다.
젖은 모래를 정성스럽게 만지고 다듬는다. 좌측에 언덕을 만드는 일을 열심히 한다. 가운데 원을 만드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벌떡 일어나서 소품들을 잔뜩 가져오기 시작한다. 고르는데 신중하지 않고 뭔가 눈에 들어오면 바로 챙겨오는 식이다.
이곳은 깊은 산 속이다. 이상한 우물(중앙)이 있는데 사람이 오면 그냥 우물에서 죽은 시체가 된다. 저주받은 우물이고 주변에 구슬들은 우물의 표시이다. 처음에 길 잃은 사람들이 와서 죽었다. 나중에 우물의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온 사람들이 죽는다. 마법사가 살 것 같은 깊은 숲 속의 저주받은 우물이다. 우물에는 물이 없다. 우물을 지키는 개(좌)가 동굴(좌)에 있다. 아주 사납고 야생이다. 동굴 앞에 장승은 사나운 개가 산다는 표시이다. 동굴 입구에 개구리는 개의 먹을거리이다. 감나무(좌하)는 아기나무이고, 숲(상)은 몇 천년된 나무들이 자라 웅장하고 멋있다.
가운데 마른 모래를 이리저리 쓸다가 좌우로 올려 쌓는다. 평소처럼 큰 소품부터 들고 온다. 몇 백년 된 나무(우상)와 해골탑 (좌하)을 양 끝에 동시에 쿵 놓는다. 기사(우상)와 저승사자(좌하)가 들어온다. 둘은 각자의 세계를 다스리는 능력이 있는 신이고, 기사가 더 강하다. 내담자는 기사 편이다. 기사(우)는 나무아래 알을 지키고 있고, 저승사자(좌) 무리가 이 알을 가지러 왔다. 알 하나는 기사 신(神)이 지키고 다른 하나는 저승사자가 가져간다. 해골 탑(좌하)은 저승의 입구이다. 저승으로 간 알은 바로 죽는다.
나무(우상) 아래 과일바구니는 알에게 줄 음식이다. 알은 부화하여 공룡이 된다. 새들(좌상)은 물에 있다가 벌판에 난 싸움을 호기심에 구경하러 나왔다.“죽음을 생각하면 무섭고 깜깜하다. 저승은 이상할 것 같다.”내담자는 지난해 명랑하고 활기차 보였다. 그런데 말수가 줄었고, 지난 회기부터 말을걸면 눈물을 뚝뚝 흘린다. 상담자가 이런 저런 말을 걸지만 짧게 단답식으로 답한다. 상자를 꾸미고 나면, 잘 보라는 식으로 앉아만 있다.
새로 입학한 고등학교 이야기로 시작한다. “신입생 수련회(orientation)에 재미있게 다녀왔다. 빨리 대학에 가고 사회에 나가서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리다는 것은 찌질해 보여서 싫다.”이곳은 민속촌이다. 장승 totem pole(좌)이 서 있는 좌측에 입구로 20대 여자 둘이 들어온다. 둘은 친한 친구이다. 우물(우하)은 옛날 것처럼 생긴 것을 가져다 놓은 것이다. 우물 앞에 중학생은 친구들과 놀러 왔다. 20대 꺽다리 남자(우)는 가마솥(우)을 구경한다. 소심하고 착한 성격이다. 초가집(우상)의 농기구들(우측)은 실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용이다. 채소밭(상) 앞에 초가집을 구경하는 아줌마는 남편과 왔는데 남편은 민속촌 밖에 있다. 호수와 폭포(좌상)가 이곳에 먼저 있었고 그 자리에 민속촌을 세웠다. 큰 호수는 물이 많다. 물이 많은 바다를 보면 무섭고 싫다.
내담자는 요즘 말을 걸면 눈물을 뚝뚝 흘리거나 짜증도 낸다. 송곳니가 살 짝 튀어 나와, 웃을 때 보이는 치아가 나름 내담자의 개구지고 매력인 미소였다. 그런데 치아 교정을 위해 네 개를 뽑았다. 그래서인지 인상이 조금 바뀌고 밋밋한 미소가 되어 버렸다. 말없이 눈물을 흘리면 상담자가 내담자의 눈치를 보게 된다. 평범한 마을처럼 보여 상담자에게 안심하는 마음이 느껴질 때, 이것은 모두 관광용, 가짜 세계라고 한다. 은근 상담자의 속내를 떠보는 듯 약 올리는 말투와 표정이 매우 얄밉다.
요즘 왜 눈물을 흘렸는지 물어보며 상담을 시작한다. 웃으면서 눈물이 그렁이다가 말이 없이 웃기만 한다. 눈치를 살피다가 모래를 하자고 했더니 팔을 걷어붙이고 평소보다 더 열심히 젖은 모래를 파서 만든다.
폭포(좌상)가 있는 호수에 앉아 있는 남자아이는 7살이고 죽었다. 배(좌상)는 저승으로 간다. 배 위에 남자들은 죽은 자들이다. 이들은 기분이 좋지 않다. 특별히 나쁜 짓을 하지 않았지만 죽었다. 죽음은 무섭다. 강을 따라 무지개(우하)를 지나면 저승이다. 강둑에 비치볼, 담배꽁초, 빗은 배를 타고 저승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놓고 간 물건이다. 무지개는 저승으로 들어가는 입구, 관문이라는 표시이고, 무지개 옆에 독수리는 저승에 들어온 자들이 못 도망가게 지킨다. 무지개 아래 시계탑은 멈춘지 오래 되어 큰 거미줄이 생겼다.
강 위에 집(우상)과 강 아래 집(좌하)은 일을 시키기 위해 고용된 죽은 사람들의 집이다. 녹색 옷 입은 꺽다리(좌하)는 20대로 착하고, 채소를 가꾸는 임무를 맡았다.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걷다가 삐었는데 3일 후에 다리가 퉁퉁 부어 정형외과 갔다. 의사선생님이 인대가 거의 끊어져 가고 있어서 통증이 심했을 텐데 몰랐냐고 했다.”
기숙사 같은 집에 들어 왔다. 독서실 책상 같은 것이 있고 여러 청년들이 앉아서 공부를 한다. 앉아서 공부 하던 예비역 선배 같은데 무슨 대학에 합격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그 선배에게 전해준다. 그 선배는 너도 잘 될 것이라면서 지금 공부 시켜주는 그 여자 선배는 어떠냐고 물어 본다. 생각해 보니 나도 큰 시험(대학시험, 혹은 고시) 같은 것을 앞두고 한 살 많은 여선배와 공부를 하고 있다. 이 여선배가 가르쳐 주는 것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느껴지며, 내가 이 선배를 좋아하고 있나? 물어보는 것 같다. 그동안 존경의 대상이었지 연애의 대상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뭔가 답하기가 어렵고 난처하다. 그래서 답을 그냥 얼버무린다.
여선배와 마저 공부를 마치고 생각해보니, 이 여자는 매우 헌신적인 사람인데 (가족이나 조직 그런 것에) 나는 아마 그런 점에서 넘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이렇게 생각해보니 아마 이 여자와 연애를 해도 되겠다 싶은 (프로포즈를 해도 되겠다.) 생각이 든다. 그 기숙사 같은 곳에서 나와서 대학교까지 함께 왔다. 들어가는 입구 앞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하면서, 나는 어쩌면‘이 여자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기 시작한다.
이곳은 우주의 어떤 혹성이다. 사람들은 이 곳에서 생명체의 화석을 발굴하고 기지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나무(중앙)가 죽어서 모두 떠났다. 나무가 살아야 사람이 살 수 있는데 모두 죽어버렸다. 전기는 들어왔지만 오래 되어 꺼졌다. 탱크(우)는 기지의 기계장비이고, 지구본(우상)은 연구용이다. 그런데 봉우리(좌하)에 작은 꽃이 스스로 피어났다.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꽃은 살아있다. 어쩌면 이 꽃으로 생명이 자라서 사람들이 돌아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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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물이 세상을 덮었는데, 말하자면 북극의 얼음이 다 녹아서 세상이 물에 잠겨 콘도가 있는 제주도의 산 정상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산 정상에 두 명의 남녀가 앉아 있다. 남자는 나이는 모르겠고 검은 옷을 입고 검은 그림자처럼 표정 없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여자는 18-20세 정도 되어 보이고 남자의 시중을 들고 있는 것 같다. 멀리 바다에 잠긴 산들과 섬들이 보인다. 남자는 큰 대금(퉁소)같은 것을 꺼내어 분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그 옆에서 주먹만 한(작은 오카리나만 한 것) 소리통을 들고 남자의 연주를 돕는다. 남자가 어떤 곡을 연주하려고 퉁소에 입을 대고 숨(바람)을 넣는다. 하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다. 그러면 여자아이가 그 작은 소리통에 자기의 숨을 넣고 그 작은 소리통으로 음을 만들어서, 작은 음이 새어 나오는 그 소리통을 남자의 큰 퉁소의 둥근 입구에 살짝 끼워 넣고 퉁소와 소리통을 양손으로 부드럽고 리듬감 있게 빙글 빙글 돌려가며 넣었다 뺐다하여 돌리면 남자가 연주하려고 넣은 숨(바람)이 곡이 되어 연주가 된다. 첫 연주가 이렇게 되었다.
남자의 곡의 수준이 점점 놓아지고 여자아이는 그 때 마다 소리통에 자기의 숨을 넣어서 남자의 곡이 연주 될 수 있도록 소리통에 숨을 담아 퉁소에 넣어서 음을 잡아 곡이 나오게 하는데 마치 손으로 춤을 추는 듯하다. 이제 남자의 세 번째 곡이다. 남자는 맹인처럼 눈을 감고 자기 연주에만 몰입한다. 여자는 이제 남자의 곡을 따라가기 어려운 듯 소리통에 숨을 넣기가 버거워 보인다. 여자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남자에게 눈을 흘긴다. 내가 자기 위해 이렇게 숨을 넣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냔 듯 하는 투정의 눈 흘김이고, 또 마지막 곡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느냐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온 힘으로 숨을 넣는다. 남자의 곡은 이미 여자아이의 숨을 넘어 섰다. 그래도 남자는 그 이상의 곡으로 올라가서 큰 퉁소에 숨을 마저 넣는다.
여자는 그 자리에서 손 유희로 퉁소에서 나오는 남자의 곡을 따라가며 절정에 이른다.나는 그 퉁소에서 나오는 마지막 소리가 음파처럼 ⌾ 이렇게 나오는 것이 보인다. 그 소리 파장이 나를 친다. 나도 그 여자 아이처럼 그 소리에 어떤 카타르시스에 이른다. 귀가 열리는 것 같고 이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마지막 소리 파동을 맞으면서 모든 것이 보이는 듯 큰 물이 보이다가 울렁거리면서 잠에서 깬다. 그 순간 연주하는 남자와 듣던 아이는 모두 나처럼 보인다. 큰물에 잠긴 산위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은 사막이다. 40대 두 명의 남자(우)가 길을 잃고 이 곳으로 들어왔다. 둘 다 성격이 좋고, 착하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다가 여행 왔는데 길을 잃고 헤매다가 오아시스(우)를 보고 이제 살았구나 하며 좋아한다. 녹색 옷의 꺽다리(우상)는 약 10년 전에 길을 잃고 사막에서 살고 있다. 착하고 멍청해서 나갈 생각도 못한다. 밖으로 나가도 백수가 되어 지방에서 살것 같다. 화초, 새, 낙타를 이곳에서 키운다. 하루 종일 그냥 있는다. 이런 착하고 꺼벙한 남자는 답답하고 싫다. 몽구스 가족은 밖에 있다가 오아시스가 있어서 놀러 왔다.
나무는 20살이다. 꺽다리(우상)는 나무를 의지하고, 마음친구로 10년을 살았다. 밝은 표정에 즐겁게 작품을 꾸민다.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을 물으니“안재현”이라고 한다. “그렇지 안씨가 잘 생겼지!”하고 농담을 하니 특유의 막 웃음으로 박장대소한다.“아빠와 안재현 중에 누가 더 좋으니?”하니 그건 비교가 안 된다고 한다.“우선 아빠는 키가 작다. 안재현은 착한데, 아빠는 착하기만 하다.”
중앙에 분화구처럼 산(중앙)을 만든다. 그 안에 알(중앙)을 놓는다. 여기는 들판이다. 타조부모가 알을 키우고 있다. 알을 부화해서 잘 클 것이다. 달팽이, 거북이, 뱀(우)는 태어날 새끼들의 먹을거리이고, 파란 마차(우)는 새끼들을 태우고 다닐 유모차이다. 물웅덩이(우하)를 파서 옆동네 오리들이 놀러왔다. 여기는 분위기가 좋다.
시험기간이라 안부를 물어 보며 내담자의 분위기를 살펴본다. 지난 회기부터 눈물을 안보여서“요즘 왜 안울어?”하고 물어보니 “왜요? 몰라요!”버럭 화를 내 상담자가 무안해진다.
이곳은 공룡박물관이다. 파란 옷의 50대 여자경비(좌)는 박물관을 관리하고 지킨다. 여자경비의 오른쪽으로 갈색머리 소녀(좌)는 건너편에 분홍머리소녀(우상)와 함께 온 초등학생이다. 갈색머리 소녀의 오른 쪽에 30대 아주머니(하)는 주말인데 별로 할 일이 없어서 혼자 왔고 사납다. 다시 오른쪽에 초록 모자 소년(하)은 오른쪽 건너에 노랑 모자(우)와 일행인데 장난꾸러기에 개구쟁이이다. 초록모자 소년의 오른쪽에 있는 중학생 소녀(우하)와 빨간 옷(좌)을 입은 유치원 아이는 성격 좋고 사이좋은 자매이다. 기자와 카메라맨(상)은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 말단 직원인데, 착하지만 승진은 못한다. 모닥불(중앙)은 공룡우리를 따듯하게 해주고 있다. 상담자가 사례정리 중에 5회기에 나온 코끼리 신을 찾아보니 힌두교의 가네사 신이라고 알려주자 관심을 보인다. 인간의 몸에 코끼리 머리를 가지고 네 개의 손을 가진 지혜를 성취시키는 번영의 신이다. 가네사 신이 마하바라타를 쓸 때 서기였고 문학을 관장한다고 부분에서 자기가 원래 글을 엄청 잘 쓴다고 신나한다. 초등학교때 자기가 시를 쓰면 반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이 많이 칭찬해주었다고 한다. 상담자가 못 믿는 척 하니, 자기는 정말 시와 글을 잘 쓴다고 허풍을 떤다.
문뜩 아빠도 글을 쓰는지 물어보니 아빠가 글 쓰는 것을 본 적 없지만 잘 쓸 것 같다고 한다. 아빠는 10남매 중 막내였고, 똑똑하지만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아빠이야기 할 때 눈물이 글썽인다.
나는 오가다 센세이의 집에 방문한다. 집은 허름하고 오랜 된 나무집이다. 나무는 삐걱거리는데 검은색으로 보인다. 센세이는 구부정한 모습으로 천천히 현관으로 나와서 나를 데리고 집의 부엌으로 간다. 부엌에 앉으니 센세이가 말한다. 이 집이 모래상자라 생각하고 이 부엌은 모래상자의 어디냐고 묻는다. 나는 머리 속으로 그려보며 상자의 우하단이라고 답한다. 잘했다고 칭찬하시더니 그럼 상자를 한 바퀴 돌리면 어디가 부엌이냐고 묻는다. 그럼 우상단이라고 나는 답한다.이번에도 잘 했다고 칭찬하시더니 그럼 한 바퀴 더 돌리고 돌리면 어디냐고 물으신다. 그럼 상자의 좌하단이라고 답한다. 나는 그렇게 부엌의 위치를 상자 안에 그려보다가 뭔가 크게 깨우치게 된다. 아하! 그렇구나! ‘구석에서 뭔가 파고 꾸미는 것이 모두 다 부엌이구나’나는 머릿속으로 이걸 깨우치고 센세이가 나에게 질문한 바를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는 듯 웃는다. 센세이도 그런 나를 보시고 이제 알았냐는 듯 빙긋이 웃는다.
이곳은 섬이다. 남자(중앙)는 바다를 지나가는 범선(좌하)을 보고 있다. 해적이었고, 길을 잃고 이 섬에 와서 산다. 개(중앙)는 이 섬에 살고 있었다. 남자가 와서 함께 둘이 함께 있다. 남자도 여기에 정착하기로 했다. 이제 해적질은 그만두고 등대(우상)를 지키며 살 것이다. 음식(상)은 섬에 있었다.
보물상자(상)에 금이 있는데 해적질하여 모았다. 하지만 여기서 쓸 일이 없다. 개가 있어서 남자는 외롭지 않다. 남자는 문맹이고 40대 중년이다.
평소보다 더 천천히 신중하게 소품을 골라 상자를 꾸민다. 강의 좌측은 죽음의 신(좌상)이 사는 세계이다. 흰색 지붕의 큰 집이 죽음의 신이 사는 집이고 옆에 붉은색 작은 집은 하얀개(좌상) 사는 집, 아래에 빌딩은 화장실이다.
삐에로처럼 생긴 남자들은 30대로 죽음의 신의 땅에 붙들려 왔다. 한 남자(좌하)는 불을 피우고, 다른 남자(중앙)는 개미를 잡아서 먹고 있다. 강 위에 남자(우상)는 살고 싶어서 고목 뒤에 숨어 다리를 건너갈 틈을 노리고 있다. 강의 오른쪽은 평범한 마을이다. 오른쪽 마을에서는 강과 죽음의 땅이 보이지 않는다. 책 읽는 여자(우상)는 할머니이다. 교회(우하)에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다. 엄마(우하)는 트리를 들고 교회에 가고 있다.
젖은 모래를 모으고 나누며 높은 산과 큰 강을 만드는 모습이 시원해 보인다.“한 달 동안 열심히 살았어요. 정말 열심히. 기분도 괜찮았어요. 야간자율학습도 안 빠지고 다 했어요. 집에 가면 밖에 나오기 싫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은데, 성실해진 것 같아요. 이렇게 성실해지는 것에 대해 불만은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은 것이 있지는 않아요.”
어선(중앙)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시장에 팔기 위해 오고 있다. 남자(우상)는 40대 교수로 학식이 많다. 어쩌다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 보트(상)를 타고 간다. 풍차(우상)는 집인데 전기를 만드는 발전기여서 전신주에 저장한다. 남자는 심심해서 어선이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다. 이곳은 섬은 아니고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다. 산(중앙)은 높지는 않지만 큰 산이다. 남자의 기분은 평화롭고 여유롭다. 남은 삶을 이곳에서 쉬면서 공부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사과나무에 사과는 덜 익었다.
이목구비가 단정하면서 장난기 어린 한 소녀가 모래상자 앞에 있다. 소녀는 진지한 듯하면서도 특유의 개구진 표정으로 상자를 꾸민다. 나는 상자를 느끼고 읽어야 한다. 가만히 상자 안을 본다. 소품들이 나의 눈에 들어온다. 나무도 있고, 동물도 있고, 나의 눈에 들어온 소품들은 이제 진짜 살아있는 듯 모래 위로 올라온다. 공작새도 올라오고 코끼리도 올라오고 하마도 올라온다. 그때 누군가(어떤 꿈의 목소리가) 모래상자 위로 살아 올라 오는 이 모든 상징들은 그 안이 있다고 알려준다(소품의 안쪽에 무언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상자 앞에 앉아 천천히 마음을 비우고 수도하듯 명상을 한다. 이제 모래상자 위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네모만 있다. 그리고 잠시 후 한가운데 수정이 하나 올라온다. 파란 수정은 마치 숨을 쉬듯이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조금 징그럽기까지 하다. 수정안을 보고 싶지만 파란 바닷물처럼 그저 맑기만 하다.‘이 수정의 안에 그 깊은 곳이 수많은 상징들을 모래 위로 살려 올려주는 것이구나’하고 느낀다. 수정은 마치 모래상자 한 가운데 심장 같기도 하고 네모난 우주 속에 지구 같기도 하다. 나의 마음이 편안하고 개운하고 또 경이롭다.
모래를 부드럽게 쓸어서 좌측 상단으로 올리고 언덕을 만든다. 저택(좌상)은 새로 지은 집이다. 집 안에 일하는 가정부들이 있다. 친척들이 다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유럽형 저택이다. 방이 20개이고 내부 구조는 복잡하다. 일단 집은 커야 좋다고 한다. 그네를 탄 소녀(우)는 10대 중학생인데 그네 타는 것을 좋아한다. 연못 앞의 소녀는 10대 고등학생이고 동물을 사랑한다. 스포츠카 앞의 여자(상)는 20대 대학생인데 기타 치는 것과 노는 것을 좋아한다. 흰 파라솔의 여자(좌)는 20대이고 요리를 좋아한다. 다들 사이가 좋은 일종의 친척 관계이고 착하지만 공부는 못한다. 이렇게 할 일은 없는데 심심하지 않고 행복한 것이 바로 인생이다. 멍멍이와 고양이는 새끼오리들 노는 것이 예뻐서 구경한다. 연못주변에 돌들은 금과 은이다.
“요즘은 기분이 좋아요.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뭔가 행복해요. 여유로워 졌나 봐요. 짜증도 덜 내고. 시험기간에 집중도 돼요.” 상담자가 보기에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상자에 나온 인물들은 할 일이 없는데 심심하지 않은 행복한 인생이라고 한다. 다시 상자를 감상해 보니, 내담자의 마음이 조금씩 공감이 된다.
모래를 부드럽게 만지다가 중앙에 시계탑을 놓으며 시작한다. 평범한 휴일의 공원이다. 피아노 공연(우하)도 보고 삐에로 공연(좌상)도 본다. 피아노는 재즈를 연주하고 있다. 저녁 7시경이다. 벤치에 앉은 청년(우상)은 회사원이고 미혼이다. 못생겨서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 그래서 자기 모든 재산을 털어서 달마시안을 사서 가족처럼 산다.
내담자가 별다른 말없이 상자를 즐거운 듯 감상하기에, “벤치에 청년(우상)이 매점 앞에 금발 아가씨(좌하)를 보는 거 같네. 둘이 사귀게 되려나? 달마시안도 있고.”하고 웃으며 말해본다. 아가씨가 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둘이 사귈 일은 절대로 없다고 한다. “그래도 청년이 성격도 좋고 인품도 좋아 보이면?”하고 물으니 “이 청년은 못생겼고, 게다가 키가 작아서 절대 안 돼요. 선생님이 여자를 잘 몰라서 그래요. 여자는 남자의 인품에 반하지는 않아요.”오히려 상담자에게 핀잔을 주며 가르치려는 모습이 재미있다.
“열심히 시험공부 해보았는데 성적은 그대로예요. 그럼 공부 안 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살짝 투정으로 시작한다. 상단에 모래를 파고 두드려 시냇물을 만든다.
이곳은 할아버지의 무덤(좌)이다. 무덤 앞에 며느리, 할머니(80대), 아들(40대), 손자가 서 있다. 무덤 앞 비석에 할아버지의 이름이 쓰여있다.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고 둘은 정말 사랑했다. 할머니는 쓸쓸하다. 하지만 슬퍼하지는 않는다. 할머니는 무덤 위에 장미꽃을 보며 이제 곧 당신을 만날거라는 생각한다. 아들(초록색)도‘아! 엄마가 곧 아버지에게 가겠구나.’하고 느낀다. 그렇지만 슬프지 않다. 할머니는 2년 후에 죽는다. 손자(위)는 강 건너의 거북이를 보고 있다. 별 생각은 없다. 무덤 위에 핀 장미 한 송이는 남은 자들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상자를 감상하는 상담자에게 애잔한 마음이 올라오고 불현듯 이제 상담의 끝이 다가온다는 느낌이 든다.“그러나 슬퍼하지 않는다.”는 내담자의 말에 여운이 맴돈다.
“한 달 동안 잘 살았어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이, 아무 일도 없었으니 기분 좋게 잘 산 것이에요.”상단을 파서 동굴 바위 소품을 묻고 모래로 덮는다. 좌측 위부터 모래를 파서 우측 하단까지 물길을 낸다. 동굴 앞에 작은 모닥불(중앙)을 놓고 남학생(중앙)이 동굴 앞에 선다. 소나무(우) 아래에 새끼를 엎은 엄마 침팬지(우)가 서있다.
이곳은 돌산(상)이다. 남학생은 친구를 몇 명만 사귀는 모범생 스타일의 고등학생이다. 돌산에서 동굴을 찾았고 호기심으로 들어갔다 나온다. 오늘은 혼자만의 비밀 탐험이다. 모닥불은 원래 이곳에 있었다. 동굴 안에는 현금 200만원이 있다. 그리고 원석이 있다. 원석이 있다는 것을 남학생은 모르지만 침팬지는 알고 있다. 침팬지는 남학생이 200만원만 들고 나올지 아니면 원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지 궁금해서 지켜보고 있다.
분위기 좋은 마을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마을이고 풍차는 집이다. 소녀(우상)는 중학생이고 착하다 못해 평범한 얼굴이고 개도 착하다. 지금 중앙에 불을 구경하고 있다. 우체통 앞에 소녀는 초등학생이고 그냥 내용의 편지를 그냥 보낸다. 남자(좌)는 대학생으로 지극히 평범하다. 노래를 잘한다. 남자도 불구경을 하고 있다. 파란 모자는 중학생(좌하)이고 소녀(우상)의 절친이다. 평범하고 착하다. 벤치에 엄마와 아들(우하)이다. 이렇게 저녁에 호수에 불을 피우면 책을 읽어준다. 둘이 친하다. 저녁이 되면 마을의 아빠들이 마을 사람들을 구경하라고 불을 피운다. 이 불은 따뜻하고 멋있고 낭만적이다. 풍차를 돌려서 전기를 만든다. 항아리(하단)에는 김치가 익어가고 있다. 평화롭고 행복한 저녁이다.
길을 걷고 있다. 차들이 많다. 이곳은 몽골의 울란바토르(Ulaanbaatar)이다. 앞으로 가던 차들이 서로 부딪친다. 그렇게 차들이 많이 부딪쳐서 도로는 엉망이 된다. 그리고 다시 차들이 질서를 잡고 움직인다. 멀리 있는 차들부터 모양이 바뀐다. 헌 차가 새 차로 바뀌는 듯하다. 나는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은 지하에 있고 큰 나무로 된 기둥이 있다. 그런데 100도의 물이 나오지 않아서 오전에는 목욕을 할 수 없단다. 실내는 황토 찜질방 같은 분위기인데 온천물이 나오는 곳 같기도 하다. 집사람과 나는 다시 나온다.
언덕에 가서 한 여성을 만난다. 누군지 모른다. 그 여성은 30대 정도 그 옆에 10대 그 옆에 5세 미만의 여자아이가 서 있다. 30대 여성에게 옆에 10대가 어릴 적 모습이고, 그 옆에 5세가 더 어릴 적 모습이냐고 묻는다. 혹은 30대에게 알려준다. 그러면서 여성은 나에게 환영을 보여준다. 욕조가 있다. 남자가 누워있다. 욕조라기보다는 어떤 구덩이 같다. 붉은 진흙을 직사각으로 파고 그 안에 물이 담겨있다. 물은 깨끗하지 않고 흙탕물이다. 남자가 있고 그 옆에 아까 5세 쯤 되는 여자아이가 누워있다. 둘 다 반쯤 물에 잠겨있다. 여자 아이가 점 점 점 더 커진다. 이제 여성은 20대 쯤 되었다. 옆에 남자는 그녀의 아빠인가 그럴 수 있다. 남자가 여성의 성기에서 무엇을 살짝 꺼낸다. 뱀이다. 뱀이 물위에서 헤엄쳐 다닌다. 뱀은 파란색과 붉은색이 모두 있다. 이런 환영을 보고 나서 어떤 남자가 말하기를 이 영상이 가장 최신에 만든 영상이라고 말해 준다. 나는 이제 다시 목욕탕으로 내려간다.
논의 및 결론
사람들은 마음의 고통을 겪을 때 도움을 필요로 한다. 많은 내담자들은 심각한 심리적 문제와 깊은 상실, 트라우마나 정신과적 증상 등의 고통을 겪을 때 의료적 도움이나 상담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하지만 본 연구 사례의 내담자의 경우 모의 보고에 의하면 중2가 되면서 우울감을 보이기 시작하였지만, 체중, 식욕, 수면 등의 이상 변화 혹은 과민한 기분이나 사고, 집중의 이상 감소와 같은 병리적인 우울의 증상을 특별히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사례의 주호소와 이슈가 애매하고, 본인의 문제의식이 없는 것은 상담자에게 상담의 방향에 대하여 막연함을 주었다. 또한 내담자는‘중2병’이라는 14세의 소녀이다. Okada(1984)는 이 시기의 아이들은 상담이 가장 어려울 때라고 한다.
본 연구의 상담자는 39세 중년 남성으로 모래놀이 상담의 첫 케이스로 이 사례를 맡았다. 상담자는 자신의 상담 경험과 경력의 부족함이 상담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상담자-내담자의 관계를 원만하게 이루지 못하여, 상담이 겉돌고, 흐름이 지연되거나 고착되어 상담 관계가 깨지게 될지 모른다는 부정적인 기대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내담자는 상자를 꾸미고 작품을 제작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이 점이 상담의 진행을 이끈 큰 힘이다. 이렇게 내담자와 작품 사이에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작용은 모래놀이 상담이 가지고 있는 상호작용의 한 축으로(Okada, 1984), 내담자와 작품 사이의 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Lowenfeld, 1931).
Kalff (1993)는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에 일어나는 행동과 반응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복잡한 상호관계를 이루어 상자작품에 나타나고, 특별한 소품을 선택하는 것이 상담자의 특성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연구사례의 24회 작품에 출현하는 많은 남자 소품을 살펴보는 것은 인상적이다.
도시를 건설하러 온 40대 사장과 청소부(1회기)는 상담자의 연령과 비슷하다. 폐차장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청년(2회)은 착하지만 똑똑하지 않다. 화산이 터졌는데 피신도 하지 않고 동굴에 숨은 청년(3회), 전쟁이 나자 항아리에 숨은 남자(4회), 세심하지만 자신감이 없는 꺽다리(6회)와 책임감은 있지만 무뚝뚝한 중년감독(6회), 폐허를 바라보며 놀라고 마음이 아픈 소년(8회) 등 상담의 전반부에 많은 남성들이 출현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무엇인가 부족하거나, 소극적이거나 자신감이 없고 움직이지 않는 부정적인 모습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상담의 중반에 이르러 마치 낡고 부정적인 것들이 죽어야 하는 것처럼 저승으로 가는 길에 많은 죽은 남자(12회)들이 출현한다. 그리고 나무가 죽어 사람들이 떠난 혹성에 작은 꽃(13회)이 스스로 피어난다. 후반부에 출현하는 남자들은 부족하긴 하지만 장점이나 긍정적인 측면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사막에 남자(14회)는 꺼벙하지만 나무를 의지하여 산다. 중년의 남자(17회)는 문맹이지만 해적질을 그만두고 등대를 지키고, 40대의 교수(19회)는 풍요로운 마음으로 연구를 한다. 할아버지의 죽음(22회)은 인상적이다. 내담자의 기운이 없고 무기력한 부분이 묻히는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큰 의미에서, 부정적인 아니무스의 죽음이 할아버지를 떠나 보내는 할머니의 애도를 통해 표현되는 것 같다. 이제 내담자 또래의 청년(23회)은 동굴을 탐험하고, 아버지들(24회)은 저녁이 되면 마을 사람들을 위해 호수 가운데 따뜻한 불을 피운다. 소년에서 중년의 남성들이 변화하고 발달해가는 모습은 내담자의 아니무스가 변하고 발달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
남성을 통해 표현된 인상적인 장면과 함께 후반부에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저승으로 가는 길(12회)에 시계탑의 큰 거미줄은 여성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의 우물(9회기), 저승사자(10회기), 저승으로 가는 길(12회)로 이어진 죽음의 테마를 본다면 작품 전체가 죽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큰 거미줄은 내면의 부정적인 여성의 죽음인 것 같다. 죽음 후에 새로운 생명이 꽃(13회)으로 태어나고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변환되어 간다. 꽃은 새로운 삶, 새로운 의식이 도래하였음을 상징하는데, 대극을 초월하는 통합의 상징이자 여성성을 상징한다(Johnson, Go, Lee, 2011).
공룡박물관의 여자경비원(16회)은 남성적인 여자에서 점점 여성으로 가까워지는 모습이다. 10대 중학생과 고등학생, 20대 여대생(20회)들은 여유로운 저택에 살고 있고, 평화로운 공원(21회)에서 청년은 금발 아가씨를 바라보고 있다. 여성의 모습을 확인하고 자기 내면의 여성상이 성장하여 소녀에서 숙녀가 되어가는 정신의 발달이 전개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슬퍼하지 말라고 장미를 놓는 할머니(22회)의 장면은 한 여성의 삶을 통해 내적인 부정적인 것이 소멸하고 승화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1회기에 원시인 엄마는 인디언 텐트에서 아이에게 고기를 구워 먹였다. 마지막 회기에 엄마는 호수에 영원한 불이 피어오르는 저녁, 벤치에 앉아 아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내담자는 작품을 통해 남성적인 자신의 아니무스를 다루었지만 마지막에는 성숙하는 여성을 표현하고 있다.
살펴 본 것처럼, 내담자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내담자와 작품의 전이가 상담관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작품에 표현된 남자들의 인상적인 이야기들은 사춘기의 내담자에서 아버지 또래의 상담자로 향하는 전이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내담자는 내면에 있는 남성성 발달의 중심에 상담자라는 존재를 놓고 있지만, 자신의 아니무스는 그것에 메이지 않고 그 존재를 넘어서 발달한다.
이러한 내담자의 작품과 상담자에 대한 긍정적인 전이는 긍정적인 역전이를 불러일으킨다. Jung(1945/2004)은 상담자의 심리적인 상태가 전이에 의하여 변할 수 있다고 한다. 상담의 초기에 신뢰와 불안, 호의와 반항 등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교차하는 혼돈은 연금술의 니그레도(Nigredo)에 상응한다. 상담자도 눈치채지 못한 상태에서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의 무의식적 동일성을 만들고 경우에 따라 전이의 신호를 보내는 꿈을 꾼다(Jung, 1945/2004).
본 연구에 나온 상담자의 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상담의 초반에 꿈은 십대의 예쁘장한 소녀(꿈1)와 회당에서 의학 혹은 침술을 배우기 시작하고, 여중생(꿈2)을 가르치며, 교실의 먼지를 탁 탁 털어 분위기를 바꾼다. 50대의 여류작가(꿈3)가 5년간 번역한 이야기를 인터뷰하고, 사춘기 소년의 들뜬 감정으로 첫사랑을 고백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여학생을 놓쳐버린다. 아리아리하고 가슴이 저리는 듯 살짝 달뜨는 아니마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다.
내담자 또래의 여고생 3명(꿈4)을 모래놀이 상담사로 봉사하게 하는 꿈과 노숙자 아주머니 3명(꿈5)을 모래놀이상담사가 되게 하고 싶은 꿈은 상담자의 아니마가 성숙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상담의 중반에 이르러 매우 헌신적인 여선배(꿈6)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을 하자, 대홍수가 난 산 정상에서 피리를 부는 남자와 소녀(꿈7)를 보게 된다. 세 번째 연주는 소녀의 숨을 넘어서 귀를 열게 한다. 상담자는‘Okada 센세이 집’(꿈8)을 방문하여 모래놀이 상자의 감상법을 배운다. 그리고 한 소녀(꿈9)와 모래놀이 상자 앞에 앉아 모래 위로 떠오르는 신비한 수정을 보면서 편안함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상담자 자신이 내담자 혹은 교육생이 되어 모래놀이상담을 체험하는 장면 같다. 상담이 종결된 후 붉은 흙 구덩이에 5세 된 여자아이(꿈10)가 점점 성장하여 여인으로 성숙하는 꿈은 상담자의 아니마가 발달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이상 본 연구사례의 작품과 꿈을 통해 모래놀이상담에서 전이와 역전이를 살펴보았다. 내담자의 작품에 표현된 남성과 상담자의 꿈에 나타난 여성은 내담자의 아니무스와 상담자의 아니마가 알게 모르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내담자는 상담자를 중심에 놓고 그것을 넘어서 자신의 아니무스를 발달시킨다. 반면 상담자의 아니마는 내담자와 그녀의 작품을 공감하는 긍정적인 역전이를 통해 영향을 받고 변화하며 성장하게 된다.
Jung(1945/2004)은 전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연금술의 상징성을 소개하면서 연금술사들이 말하는‘융합’이 상담 과정에서 ‘전이’의 핵심적 의미와 일치한다고 한다. 두 개의 화합물이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것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내담자와 상담자의 심리적 상태는 전이에 의하여 변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상담관계에서 전이와 역전이는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인 움직임을 이룬다. 즉, 모래놀이 상담에서‘전이와 역전이’는 내담자와 상담자 그리고 모래작품이 ‘상상적 놀이와 비언어적 이미지(Image)의 상징적 힘’을 통해 신비한 융합’을 이루는 초월의 과정이기도 한다. 본 연구의 사례와 꿈을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그것은 내담자뿐만 아니라 상담자의 내적 인격의 변화와 참여를 요구한다. 전이는 내담자뿐만 아니라 상담자의 전인격적인 참여와 변화를 요구하는 만큼 부정적 측면에 대한 논쟁이 선행되었음을 충분히 숙고할 수밖에 없다. 상담자는 빈 화면이 되어야 하고(Freud, 1916~1917/2016), 그것이 가볍게 지나갈 수 있다면 다행이기도 하다(Jung, 1945/2004). 자칫 상담자의 해결되지 못한 자기 문제로 인해 내담자에 대해 무엇이든지 알고 있다고 느끼거나, 지나치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하거나, 연애의 감정을 느끼는 등 전지전능 하려는 자기애적 위험 또한 작지 않다(최명식, 2003). 부모나 연인, 형제나 친구들 사이의 관계를 모델로 하여 전이와 역전이를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오직 개인적인 수준에서 고정된 방식으로만 이해한다면, 인간의 영혼을 놓칠 수 있다(Kawai, 2004).
그럼에도 모래놀이상담은‘상자의 테두리’라는 한계와 ‘모래’라는 치유적 퇴행, 그리고‘작품’이라는 비언어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에 깊은 전이의 안전한 통로이며, 상자뿐만 아니라 상담자 자신도 통로가 된다(Kawai, 2013). 또한 내담자, 상담자, 작품이라는 3요소 사이의 전이와 역전이 관계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을 통해, 상담자는 작품에만 치우쳐 내담자의 마음을 놓치지 말고 이 삼각관계의 전체를 떠받치는 역할을 감당하여야 한다(Okada, 1984). Kawai(2004)는 전이는 바람과 같다고 한다. 바람이 어느 한 곳에 묶이지 않고 자유로운 것처럼 상담자가 작품에 메이거나, 전이와 역전이에 묶이지 않을 때 영혼은 자유로움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모래놀이 치료는 아동과 청소년의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에 임상적인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Ahn, Kwak, & Lim, 2020; Wiersma, Freedle, McRoberts & Solberg, 2022), 일반 아동의 건강한 마음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Kwak, Ahn, & Lim, 2020). 모래놀이 치료에는 놀이, 명상뿐만 아니라 전이와 상징적 체험과 같은 치료적 요인을 포함한다(안운경, 2021). 하지만 치료 장면에서 전이 현상에 포함된 근친상간이나 성애적 요소는 치료자와 내담자가 다루기에 정감적으로 부담을 주는 난해한 측면이 있고, 또한 아동 및 청소년의 치료적 관계에서 도움의 여부는 별개의 논의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일반 청소년의 개별 모래놀이 치료에서 여성 청소년인 내담자의 모래 작품에 나타난 남성의 이미지인 아니무스와 중년 남성 상담자의 꿈에 나타난 여성의 이미지인 아니마의 부정적 표현이 긍정적 표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이는 모래 상자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전이와 역전이의 현상이 치료 관계에‘안전하고 보호된 공간’을 제공하는 모래놀이 치료의 치료적 특성을 탐색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