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문학작품과 모래놀이치료에 나타난 순례의 상징적 의미

이호경1, 안운경2,
Ho-Kyung Lee1, Un-Kyoung Ahn2,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온양권곡초등학교 전문상담사
2한국학교공공상담협회 공공상담교육연구원
1Onyang Kwongok Elementary School
2Korean Association of School Sandplay
교신저자(Corresponding author) : 안운경, (31198)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청수 15길 6-1, 한 국학교공공상담협회, E-mail : hanpath@gmail.com

© 2022 Korean Association of School Sandplay.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ShareAlike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Sep 30, 2022; Revised: Oct 06, 2022; Accepted: Nov 22, 2022

Published Online: Dec 31, 2022

요약

대부분의 종교에서 순례는 중요한 신앙생활의 요소이다. 성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기나긴 순례 역사의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불교에서도 부처의 발자취가 담겨 있는 성지를 순례하는 전통이 있고, 이슬람에서도 일생의 한번은 성지인 메카를 순례하는 하즈(Hajj)의 의무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네 편의 문학작품에 나오는 순례의 주제를 살펴보고, 모래놀이치료에서 순례 테마의 상징적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 문학작품을 통해 살펴본 순례는 첫째 자신, 진실 그리고 거룩함을 찾기 위한 여행이고, 둘째, 위험과 고난이 있는 여행인데 그 과정은 때로는 알 수 없는 길, 미궁을 헤매는 것과도 같으며, 셋째, 이러한 시련을 거쳐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고 마지막으로 결국 다시 자신의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여정이다. 모래놀이치료에서 이러한 순례의 상징적 체험은 Dora Maria Kalff의 모래놀이 동식물-투쟁-통합이라는 3단계처럼, 공통의 패턴과 테마를 상자의 장면을 통해 체험하게 한다.

Abstract

Pilgrimage is an important element of religious life in most religions.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the Bible is a record of the long pilgrimage history of the people of Israel. Buddhism also has a tradition of pilgrimage to the Holy Land, which contains Buddha's footprints. In the case of Islam, Hajj is obliged to make a pilgrimage to the Holy Land Mecca once in his life. In this study, we look at the theme of pilgrimage in four literary works, We would like to find out the symbolic meaning of the theme of pilgrimage in Sandplay therapy. The pilgrimage, which was examined through literary works, is first a journey to find oneself, truth and holiness, and secondly a journey of danger and hardship, which sometimes equates to wandering through unknown paths, a labyrinth, and, thirdly, with the aim of reaching a destination only after these trials and finally returning to one's reality. The journey of the narrator in the Sandplay picture is beset with many invisible dangers, but it nevertheless shows that it is time for the narrator to come out of the isolated mountain and walk his own way, like a deer that can only reach his own tree through that journey.

Keywords: 순례; 상징; 모래놀이
Keywords: Pilgrimage; Symbol; Sandplay Therapy

예수는 해마다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하였다(누가 2:41-44, 요한 2:13). 교회의 전통에서 순례의 의미는 특별하다. 아브라함은 우르, 하란 그리고 가나안까지 긴 여정을 이어갔고, 그의 후손인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을 향하였다. 성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기나긴 순례 역사의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구본식, 2002). 그리스도교회의 순례 전통은 중세로 이어진다.‘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회의 순례여행이다. 유럽에서는 10-18세기 동안 산티아고로 가는 길로 해마다 수십만 명의 순례객이 몰렸다고 한다(구본식, 2002).

그리스도교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에서 순례는 중요한 신앙생활의 요소이다. 붓다의 발자취가 담겨있는 Lumbini, Bodah Gaya, Sarnath, Kusinagara와 같은 성지를 순례하는 것은 불교의 전통이다. 아쇼카왕(Asoka, C. 270-232 BC)은 붓다의 성지를 순례하고 탑을 세웠다. 이슬람의 경우 일생에 한 번은 성지 메카를 순례하는 하즈(Hajj)의 의무가 있고, 메카순례는 이슬람의 대표적인 순례이다(김용표, 2010).

과거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도 순례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여행이다. 세계관광협회는 순례여행 등의 종교관광의 규모가 연간 180억불이 넘는다고 한다. 현대인에게 순례여행은 종교적 동기뿐만 아니라 모험이나 문화적 체험, 더 많이 알고자 하는 탐구심이나 휴식과 충전 등의 다양한 동기를 내포하고 있다(Clift & Clift, 1996). 그렇지만, 오늘날의 순례와 과거의 순례를 신앙의 순례와 문화적, 여가적 여행으로 구분하는 것은 알맞지 않을 것이다. 순례의 종교적, 역사적 의미는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에게도 특별하고 신성한 체험이고 부름이기 때문이다. 순례를 떠나는 사람은 그 사람만의 동기와 의미와 체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종교적이든, 문화적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우리는 순례를 통해서 나 자신만의 길을 구하고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네 편의 문학작품에 나온 순례의 주제를 살펴보고, 모래놀이치료에서 순례 테마의 상징적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

본 론

문학작품에 표현된 순례

첫 번째 작품은 한국의 여성 소설가 오정희(1984)가 쓴‘순례자의 노래’이다. 그녀의 소설은 일상생활 속에서 여성스러운 소재를 통해 내면세계의 미묘한 변화를 표현하였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는데, 여성의 내면적인 일상을 통해 삶의 아이러니와 생의 이면을 보여주었다(강유정, 2018).

‘순례자의 노래’는 한 여성의 외출에 대한 소설이다. 주인공‘혜자’는 어느 날 혼자 있던 집에 강도가 침입하여, 자신을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강도를 살해하게 된다. 혜자의 지인들은 침입자가 그녀와 아는 사이일 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거나, 사람을 죽인 여자라는 낙인을 찍게 되고 혜자는 이로 인해 고통스러워한다. 주인공은 결국 남편과 이혼을 하고 병원에 입원한다. 그녀는 갑자기 일상의 경계선으로 쫓겨난다. 세상과 단절된 주인공은 매우 오랜만에 시내로 외출을 가기로 한다. 혜자는 첫 외출을 나가기 전에 꿈을 꾼다. ‘늘 같은 길을 간다. 익숙하고 친근한 분위기의 돌담길을 따라 한없이 가다가 부서진 돌 틈 속에서 예쁜 단추 알이나 조그맣게 접은 종이쪽지를 찾은 것 같은 꿈’이다. 하지만,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의 길 위에서 잠을 깬다. 주인공은 잊고 있던 꿈을 다시 꾼 그 날밤의 일을 통해서, 집에 돌아왔다는 익숙한 느낌을 가지며 이야기는 끝난다.

작가는 주인공의‘걷기’에‘순례’라는 제목을 짓는다.‘순례(Pilgrimage, 巡禮)’의 어원은‘외국인이나 나그네’를 뜻하는 라틴어‘peligrinus’혹은‘들판을 가로질러’라는 뜻의‘per agrum’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은 경계선과 문턱을 뜻하는 라틴어‘Limin’과도 연관이 있는데, peligrinus는 떠도는 사람 즉 이방인이면서 경계선 너머로 추방된 사람, 고통의 밑바닥 층으로 떨어진 사람, 유배당한 사람인 것이다(Gros, 2014).

주인공 혜자는 어떤 사건으로 이혼하고, 입원해 있는 동안 일상의 경계선 너머로 추방된 상태에서, 꿈을 통해 걷기를 시작하고, 이제 외출을 통해 남편과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자 한다. 주인공의 꿈속에서 걷기는 단순한 외출이라기보다 자신을 회복하고자 하는 순례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반면 꿈속에서 걷기는 현실에서 본질적인 무엇인가를 잃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두번째 작품은 세계적인 일본의 작가 Murakami (2014)의 Colorless Tsukuru Tazaki and His Years of Pilgrimage(이하‘순례의 해’)이다. 순례의 해는 그의 13번째 작품으로 출판 당일 450만부를 이룬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36살 된 주인공 Tsukuru가 16년 전 자신이 자살 직전까지 갔던 중요한 사건을 여자친구 Sara에게 이야기하면서 진실을 찾기 위한 여행이 시작된다. 순례의 첫날은 아버지의 제사가 있었다. 그는 절에서 제사를 지낸다. 다음으로 16년 전 고등학교 시절 단짝 그룹의 친구들 네 명을 한 명씩 찾아간다. 자동차 회사의 딜러를 하는 친구‘아오’를 만나면서, 자신이 그룹에서 추방당한 이유를 듣게 된다. 그룹의 여성 멤버인‘시로’가 친구들에게 주인공인 Tsukuru가 시로를 강간하려 했다고 말했고, 그로 인해 자신이 그룹에서 추방되었지만 그 이유를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시로는 이미 죽었기에 진실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주인공은 여정을 멈추지 않고 핀란드의 헤멘린나(Hmeenlinna)를 찾아간다. 헤멘린나역은 핀란드 최초로 세워진 기차역이다. 기차역은 주인공의 순례가 끝나는 마지막 지점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출발하는 곳임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순례자의 노래’와 ‘순례의 해’두 작품의 교차 지점이 흥미롭다. 우선 한국의 여성 작가와 일본의 남성 작가의 소설이고, 한쪽은 매우 섬세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내면의 변화를 표현하는 반면, 한 쪽은 굵은 사건의 전개 속에서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두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어떤 중대한 사건으로 경계선 밖으로 추방된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의도나 계획과는 상관없이 발생한 우발적 사건으로 인해, 결국 자신이 속한 가정과 그룹, 즉 안전한 집으로부터 추방당한다. 경계 밖으로 추방은 지금까지의 ‘나’를 잃어버리게 한다. 여기서 순례는 안전한 집과 마을에서 벗어나 불안하고 위험한 들판에 홀로 남겨진다는 추방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추방은 반대로 진실을 찾거나, 자기를 회복하기 위한 순례의 시작을 의미할 수도 있다.

세번째 작품은 Alighieri (2013)의‘신곡(The Divine Comedy 1308-1321)’이다. 신곡은 100개의 곡으로 이루어졌고, 작가가 사망한 1321년까지 집필되었다. 지옥(Inferno)과 연옥(Purgatorio)과 천국(Paradiso)을 거치는 여행으로, 주인공인 '단테(dante)'가 순례자로서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거쳐 다시 지옥과 다름없는 이승-현실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이다. 이 여정에서 변환(Metamorphosis)은 순례의 과정 안에 감춰져 있는 흥미로운 주제이다(박상진, 2016). 신곡에는 변신 된 몸이나, 변환의 여러 장면이 등장한다. 지옥에는 뱀의 변환이 있고, 연옥에는 유충과 나비, 그리핀이 있다. 그리고 천국에는 순례자 자신이 빛으로 변환되는 인상적인 다양한 장면들이 있다.

신곡에서 변환의 몇 장면은 다음과 같다.‘뱀 한 마리가 지나가던 저주받은 한 영혼에게 날아올라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그러자 뱀에 물린 영혼은 순식간에 불에 타 재로 변했다. 그러나 재가 되어 사라졌던 것이 자석에 이끌리듯 다시 모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지옥24편 96-105).’

‘단테가 눈을 들어 그들을 똑바로 주시하고 있자니 발이 여섯 달린 큰 뱀 한 마리가 달려들어 온몸을 휘감았다……. 이윽고 녹아서 눌어붙은 양초처럼 서로 뒤엉키면서 색깔마저도 뒤섞여 누가 사람이고 누가 짐승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지옥.25.51-63).’

‘우리는 유충들, 최후의 심판을 향해 날아갈 천사 나비가 되기 위해 태어난 유충들임을 모르는가!(연옥.10.121-129).’

‘그리핀이 전차를 목에 걸고 끌어왔다……. 날개는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높이 솟아 있었고 새에 해당하는 부분은 황금빛이었으며, 나머지는 하얀 바탕에 붉은 얼룩들이 찍혀 있었다. 상상해 보라! 그 자체는 변함이 없으면서 그 이미지로는 끊임없이 변하는 피조물을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연옥31.121-126).’

신곡은 지옥에서 사람과 뱀이 서로 변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연옥에서 유충이 천사 나비로 변환될 것을 암시하면서, 변환된 몸인 그리핀을 보여준다. 천국에서 순례자의 눈이 멀고 빛으로 변환되는 것을 묘사한다. 지옥의‘뱀’과 연옥의‘유충과 나비, 그리핀’은 변환의 상징적 의미를 이미지를 통해 체험적으로 보여준다. 즉, 신곡은 변환의 테마를 순례라는 영적 여행 속에 담고 있다. 작가 단테는 스스로 주인공이 되고 순례자가 된다. 작품은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단계를 거치며 변환되는 작가의 내면의 과정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주인공 단테는 순례를 통해 변환되어지고, 결국 천국을 순례하면서‘다른 목소리와 다른 양털(천국25편,7)’이 되어 현실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지옥에서 뱀의 변환과 천국에서 주인공 단테의 변환의 의미는 같지 않을 것이다. 지옥의 변환은 다음 단계가 없는 변환 즉, 지옥에서 지옥으로, 고통에서 또 다른 고통을 반복하는 정지된 변환이라면, 천국에서 변환은 지옥을 거치고, 지옥을 견뎌내고, 낙원인 천국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변환된 그는 낙원에 머물지 않고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현실 세계로 돌아갈 것을 다짐한다. 순례자에게 천국과 구원은 도달하고 머무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장소이다.

네 번째 작품은 Teresa (1979) 의 ‘내면의성(The interior castle)’이다.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s)는 종교개혁 시기를 살았던 위대한 신비가이고 개혁가였다. 내면의 성은 신에게로 나아가는 과정을‘영혼의 순례의 여정’으로 기술하였다.

이 책은 신비주의적 영성을 아주 상세하게 기술하였고, 시작 단계에서 완성단계까지 과정을 유기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마치 모험담이나 여행기처럼 흥미롭다. 작품에서 ‘성’은 인간의 영혼을 상징하는데, 영혼은 있지만, 자신의 영혼을 의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마치 성 밖에 살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면서, 성안 즉 자기 안으로 들어가 성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비유와 상징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이명곤, 2014). 바로 이러한 점을 존 웰치㈜는 주목하여 그의 저서‘영혼의 순례자들’을 통해 아빌라의 테레사와 칼 융(Carl Gustav Jung)을 비교하였는데, 아빌라의 테레사와 칼 융은 서로 다른 시대와 과제를 살았지만, 마치 성을 순례하는 것처럼 두 사람은 내면의 성을 쌓았다고 하였다(유해룡, 2003).

내면의 성에는 일곱 개의 방이 있고, 각 방을 거치면서 인간의 영혼은 뱀을 만나고, 나비가 되고, 성의 중심에 왕과 결혼하게 된다. 이는 단테의 신곡과 매우 유사한 자연 상징의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네 작품을 통해 제시된 순례의 의미를 정리해보면 순례는 첫째, 안전한 자기 집에서 추방되며 벌어지는 중요한 사건이면서 동시에 자기를 회복하고 무엇인가 현실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회복하기 위한 사건이다. 하지만 순례는 그 어원처럼 위험과 큰 고통을 수반하고 있다. 둘째, 순례는 변환의 과정이고 이것은 고통의 정지된 반복이 아니라 고통을 마주하되, 그 구원인 천국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자기로 변환되어 현실세계로 돌아가게 하는 새로운 출발이다. 셋째, 순례는 신비한 통합의 과정이다. 이는 한 번의 사건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의식하고, 변환하고, 정화하고 현실과 통합하는 지속적 과정이다. Van Gennep (2000)은 순례를 미궁에 들어가거나, 위험과 고통을 감수하는 통과의례로 분리(separation), 전환(liminality, transition), 통합(incorporation)의 3단계 구조가 있다고 보았다.

모래놀이 작품에 표현된 순례

내담자는 40대 중년 여성으로 자살사고와 심리적 고통 등을 주호소로 의뢰되었다. 자살사고는 하루 종일 창문을 보면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으로 구체적이었으며, 심한 자기 비하감을 보였다. 내담자의 첫인상은 보통 키에 마른 체형으로 눈 맞춤과 목소리 등 의사소통은 원활하였다. 성장 배경과 가정 상황을 말할 때 한숨을 자주 쉬며‘내가 다 잘못해서, 내가 못나서, 내가 부족해서, 난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는 등 자기비하의 표현이 반복되었다. 내담자의 부는 공무원으로 주사가 심했고, 모는 양장점을 운영하여 늘 바빴다고 한다. 4녀 중 막내딸로 어린 시절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지 않다고 한다. 내담자는 소심했고, 직장생활을 하다 현재 남편과 중매로 결혼하여 초등학생 딸이 있다.

내담자의 주호소인 자살사고의 직접적 자극요인은 결혼 초 시작된 시댁과의 갈등 문제

였고, 증상이 심할 때에는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여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구체적인 자살성 행동 징후를 보였고, 주변의 권유로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여, 우울증 진단하에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하고자 의뢰되었다.

본 연구의 목적은 모래놀이치료 과정에서 나타난 순례의 테마이다. 따라서 내담자의 심리평가와 주요 증상 및 치료 경과 등은 생략하였고, 내담자가 모래놀이치료과정에서 순례의 구조인 분리, 변환, 통합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시리즈로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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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작품 1(session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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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1(session 3)은 3회기의 작품으로 이곳은 두바이의 사막이다.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가 있고, 우측에는 내담자의 가족과 친언니, 좌측에는 모르는 관광객이 있다. 오아시스 가운데 분수에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구경한다.

내담자는 3회기에 먼 곳 낯선 땅인 사막으로 여행을 표현하였다. 낯선 사막은 일상생활로부터 분리된 장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직 엄마처럼 의지하는(친모는 사망) 현실세계의 큰언니와 함께하고 있지만, 좌측의 관광객은 이방인으로 낯선 사막에서 낯선 사람과의 조우는 새로운 사건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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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작품 2(session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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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2(session 4)는 4번째 모래작품이다. 내담자는 어둠의 동굴로 들어갔다가 나오고 있다. 내담자는 악어, 곤충, 공룡과 같은 소품을 징그럽다며 한 번에 들고 왔다. 상자의 좌측 위쪽에 불을 뿜는 활화산과 식어가는 사화산이 있고, 우측 분수와 폭포에 내담자, 남편, 딸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인도해주는 요정이 있다.

동굴, 지하세계, 성(城)의 지하처럼 깊고 어두운 곳은 변환이 일어나기 좋은 장소이다. 의식에게 낯선 것은 작품 1의 관광객, 이방인처럼 먼 곳에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담자가 지은 작품의 제목‘내 마음속의 동 굴’처럼 내 안에 있는 낯선 것이기도 하다.

뱀, 공룡, 악어와 같은 파충류나 유충과 나비와 같은 곤충은 변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좋은 대상들이다. 알에서 태어나는 것과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으로 변태하는 나비의 한 살이는 내담자로 하여금 부정적인 것, 부족한 것, 징그러운 것, 미성숙한 것 등 내 마음속의 어두운 부분, 무의식적 요소와 상징적으로 대면할 수 있게 한다. 은유적이고 암시적인 상징적인 체험은 언어적 직면에 비해 모호하지만 안전하고 강한 정서체험을 동반한다. 아빌라의 테레사의 내면의 성에서 인간의 영혼은 뱀을 만나고, 나비가 되고, 성에서 왕과 결혼한 것처럼 내담자는 모래상자에서 순례의 상징적 체험을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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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작품 3(session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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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작품 4(session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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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작품 5(session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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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3, 4, 5는 순례의 순환 구조를 보여준다. 작품 3은 상담 5회이고, 작품 4는 6회, 작품 5는 10회이다. 작품 3은 사막에 강이 생겨난 기적을 표현하였는데 내담자는 이날 성경의 이사야서 43장 18절‘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중략-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라는 구절로 이 작품을 설명하였다.

작품 4는 해외여행이고, 작품 5는 모래 상자의 중앙에 꽃으로 마음의 중심을 표현하였다. 모래놀이 상자의 크기는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다른 직사각형이고, 직사각형은 정사각형이나 육각형 상자에 비해 균형과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다(Lowenfeld, 1939, Kalff, 2003). 또한 비율과 균형을 맞춰 중심을 잡는 것은 만다라(mandala)를 연상시킨다. 만다라는 통합의 상징적 표현으로 모래작품에 종종 등장한다.

여행과 추방이 순례의 공간적 시작이라면,‘옛날 일’을 버리는 것은 순례의 시간적 출발점이다. 내담자는 모래놀이 치료과정에서 이처럼 공간적, 시간적 분리라는 순례의 테마를 시각적으로 구성하면서 분리, 변환, 통합의 과정을 순환하고 있다.

결론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서로 다른 시대와 나라와 작가들의 순례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들을 살펴보고, 내담자의 모래놀이상자를 함께 살펴보았다. 작품을 통해 살펴본 순례는 첫째, 자신, 진실 그리고 거룩함을 찾기 위한 여행이고, 둘째, 위험과 고난이 있는 여행인데, 그 과정은 때로는 알 수 없는 길, 미궁을 헤매는 것과도 같으며, 셋째, 이러한 시련을 거쳐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고 마지막으로 결국 다시 자신의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여정이다.

그림 6은 순례의 테마가 모래놀이 작품에서 표현되고 순환하는 구조의 개요도이다. 또한 순례에서 미궁에 들어가거나, 위험과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통과의례를 떠오르게 한다. Van Gennep (2000)은 의례에는 분리, 변환, 통합의 3단계 구조가 있다고 보았다. 순례의 과정을 Van Gennep의 3단계와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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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모래놀이 작품에서 순례의 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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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인 분리의 과정은 지금까지 자신에서 벗어나는 과정으로 순례의 길을 출발하는 단계이다. 작품 ‘순례자의 노래’에서 주인공은 꿈을 통해 돌담길을 걸으며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감지하고, 작품 ‘순례의 해’에서 주인공은 절에서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며 이 여정의 출발을 시작한다. 모래놀이에서 이 과정은 여행이나 낯선 곳 혹은 지옥 등과 같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있는 장소를 통해 작품 초반에 표현되기도 한다.

2단계는 변환의 과정이다. 변환은 지하, 동굴처럼 어둡고 깊은 곳에서 일어나기 쉽다. 낯선 장소, 사람과의 조우하는 여행이 순례의 공간적 표현이라면, 어린 시절이나 시간이 정지한 숲, 정원, 외계혹성처럼 과거로 퇴행, 단절, 시간의 정지와 같은 시간적 출발로도 표현된다. 낯선 것은 멀리 밖에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 안의 어두운 것이기도 하다. 모래상자에 표현된 부정적인 것, 징그러운 것, 혹은 과거의 트라우마 사건들은 이제 안전한 상징적 체험을 통해 의식화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변환의 단계는 모래놀이 치료과정에서 과거의 모든 생활을 버리고, 과거와 미래의 사이에 어떤 정지된 상태, 혹은 성스러운 곳이나 낙원과 같은 곳에 체류하는 상태처럼 수동적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그냥 평화로운 마을이라던가, 아무도 없는 아름다운 섬처럼 일상적인 소재로 표현될 수도 있고, 거룩한 장소 혹은 신성한 인물 등을 통해 표현되기도 하는데, Kalff (1991)의 투쟁의 단계를 거치며 표현될 때가 있다.

마지막 단계는 통합의 단계로 순례자가 자기의 본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순례자가 여정의 체험을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처럼 내담자 또한 모래놀이를 통해 순례를 상징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모래놀이에서 이 과정은 상담 종결의 시기를 예고하는데, 현실의 친구와 가족을 표현하거나, 가까운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통해 표현되기도 한다. 아동들의 경우 상자를 만들기보다 상담자와 대화하거나, 혹은 상담실에 오기보다 밖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순례는 하나의 자기 정화과정이다. 순례자는 고행을 거치며 자기의 근본적인 변화를 체험하고, 자신을 새로 탄생시키고, 분열된 마음을 재통합하고, 분리된 심리상태에서 통합된 정신세계로의 변환을 경험한다. 이러한 순례의 특징은 어찌 보면 모래놀이치료의 진행과정과 많이 닮았다. 모래놀이에 참여한 내담자는 작품을 만들며, 일상의 경계를 벗어나는 체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시리즈로 작품을 만들면서 마치 순례자처럼 정화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체험한다.

따라서 순례자의 발걸음에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으며, 그 길을 재촉하지 않고 동행하는 상담자의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참고문헌

1.

강유정 (2018). 오정희 소설에 나타난‘걷기’의 의미. 배달말, 62, 139-163. http://www.riss.kr/link?id=A10543245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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