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오랜 삶 속에서 불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금속은 풀무불속에서 단련되어 대지를 일구는 연장이 되기도 하고, 가족과 나라를 지키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불은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에서 도공의 정성을 담은 항아리, 도자기를 구워내는 가마의 불까지 다양하다. 위험을 알리는 봉화(烽火)도 불이다. 불이 있어 인간은 생식에서 화식으로 음식을 익혀 먹을 수가 있었으며 문명을 시작하는 힘이 되었다. 반면 조절되지 못한 불은 산과 집 등을 삼키는 화마(火魔)가 된다. 불에는 심리적인 불도 있는데, 우리는 종종 소화시키기 어려운 강렬한 에너지를 내포한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감정(이부영, 2012)의 상태를 경험한다. 감정적 콤플렉스로 심리적인 불을 품고 있는 것이다.
민족마다 불의 기원에 대한 신화를 갖고 있는데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줌으로써 인류는 문명을 열었다(Pierre Grimal, 2003)고 전한다. 신들만이 누릴 수 있는 불을 금기를 깨고 인간에게 가져다준 것은 불이 그만큼 인류의 삶에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단군신화와 서사무가 ‘창세가(創世歌)’에 불의 기원이 있다. 단군신화에서의 불의 기원은 부소(夫蘇)는 단군의 셋째 아들로 불을 발명하였다고 전한다. 처음 세상에 맹수와 독충이 생기고 돌림병이 퍼져서 많은 사람이 죽자, 부소가 부싯돌을 만들어 불을 일으키고, 이 불로 숲을 태워 해로운 것들을 없애고 돌림병도 물리쳤다(이우평, 2007). 이것이 단군신화의 불의 기원이다.
한국의 서사무가‘창세가(創世歌)’에서 불의 기원은 처음에 하늘과 땅이 생겨날 적에 미륵님이 태어나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정리하고, 인간 세상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에게 불이 없어 날 음식(生食)을 먹으며 살았다. 미륵님이 생쥐를 불러 불과 물의 근본을 묻는다. 생쥐가 불의 근본을 알려주는 대가를 요구하자 미륵님은 생쥐에게 뒤주를 차지하라고 하였다. 그제야 생쥐는 금덩산(금정산,金頂山)에 들어가 한 손에 차돌 들고 한 손에 쇠붙이를 들고 툭툭 쳐 불을 내니 이때부터 사람들은 날음식을 먹지 않고, 익혀 먹었다고 한다(박종성, 2006).
다음은 연구자의 꿈†에 나온 부엌의 불에 대한 내용이다.
왼쪽으로 난 비포장길을 어두워지는 저녁에 몇 사람과 함께 걷는다. 지붕, 벽 등이 모두 거무스름해 음산한 집이 보인다. 사람들이 그 집을 무서워한다.
집 안에 있는 음산한 ‘그림자’가 보인다. 그림자 때문에 사람들이 집을 무서워 한 내가 ‘그림자’에게 “이제 가라. 돌아가라.” 고 한다. 처음엔 두려워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제 가라”는 말을 하려고 몇 번을 입술을 움직이며 시도한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는 ‘그림자’의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것이 내게 전달되며 느껴진다. 집안의 ‘그림자’는 죽은 사람으로 영혼이 저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이 너무 아파 목메게 울면서 ‘그림자’에게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원망(怨望) 하지 말고, 이젠 돌아가라.”라며 말을 하는데 좀 전과 달리 말이 제대로 나온다. 그 영혼이 저세상으로 갔다. 나는 집 안과 주변이 밝아지는 것을 보면서 영혼이 갔다는 것을 안다.
이젠 나는 꿈의 상황을 살펴보는 위치에 있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마을의 족장 같은 백발의 노파가 서 있다. 비슷한 조끼를 입은 마을 사람들이 노파에게 몰려와 “왜 그 영혼을 그리 쉽게 타일러 보냈냐.” 라며 노파에게 항의한다. 마을 사람들이 영혼을 좀 더 애먹이다가 보내려 했다는 식이다. 한이 많은 영혼이 가고, 집이 밝아지자 이제야 나타나서 마을 사람들도 업적을 세울 수 있었고, 세우고 싶다며 주장을 하는 것이다. 백발의 노파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마을 사람들에게 “아픔이 많은 영혼은 달래야 된다. 이제 아픔이 많은 영혼이 갈 곳으로 갔으니 집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말을 한다. 노파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밝아진 집안에선 가내 수공업이 이루어진다. 집의 뒤쪽에 지붕만 있는 옛날 부엌이 나온다. 아궁이에 불을 피우며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부뚜막엔 큰 가마솥이 걸려 있고, 아궁이의 불은 점점 커져간다. 가마솥 안에서는 볏짚으로 짠 정사각형 모양의 맷방석 같은 것이 만들어져 나온다. 그 맷방석을 도르래로 만든 간단한 기계가 옮기고 있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점점 더 바빠진다.
부엌의 불이 꿈을 통해 나왔다. 꿈의 서두에는 원한이 많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원혼을 달래자 원혼이 저세상으로 가면서 집안이 밝아졌다. 백발의 노파는 “영혼이 갈 곳으로 갔으니 집안에서 일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아궁이에 불이 피워지고, 가마솥에서는 정사각형의 맷방석을 쪄낸다. 꿈에 나온 부엌의 불은 연구자로 하여금 부엌의 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다.
친할머니는 새벽에 부엌에 나가시면 제일 먼저 정화수를 떠 놓으시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가족들의 생일날에는 정화수 그릇에 대고 두 손을 비비며 기도하셨다. 가족들의 건강과 명을 불신(火神)인 부엌의 조왕(竈王)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가족들에게 줄 음식을 매일 조리할 수 있게 하는 불신(火神)인 조왕(竈王)은 삼신과 함께 육아(育兒)의 기능이 있으면서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늘의 옥황상제께 고하는 임무를 맡은 신이다(김태곤, 1983). 조왕신이란 부엌의 신으로 부엌의 아궁이, 밥솥을 관장하는 신이다. 따라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게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조왕신의 신력(神力)에 달려있다. 그러기에 조왕신은 부엌의 신, 불의 신, 나아가 재산, 부(富)의 신으로까지 확대되기도 하였다(김형주, 2002).
본 연구는 한국, 일본, 중국의 조왕신앙을 통해 불신의 모습을 살펴보고, 조왕신앙의 중심인 불의 상징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또한 모래놀이치료 상황에서 나타나는 불의 상징성을 분석심리학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본 론
인간은 신앙의 동물이라고 해도 무관할 정도로 마음에 신심(信心)을 갖고 있다. 인류의 시작은 절대자에 대한 신앙으로 시작되었다. 동물, 나무 등의 자연이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정령이나 왕이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인류는 많은 신(多神)들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 왔다.
반만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도 다신신앙(多神神仰)이었다. 한국의 민간에선 오랜 시간을 두고 집안을 지키며, 가정을 돌보는 가정신(家庭神, 家宅神, 家神)신앙이 있었는데 이 가신(家神) 신앙이 다신신앙(多神神仰)이었다.
‘집지킴이’ 신(김광언, 2000b)인 가신(家神)들은 가족 구성원들 각자가 생활공간이 다르듯이, 그 신령들이 머무는 공간도 따로 설정되어 있다. 안방에선 삼신(삼신할매)과 조상신(祖上神)이 아이를 갖게 하고, 출산을 도와주며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주었다. 대청마루에는 가신(家神) 가운데 으뜸 신이며 호주를 돌보는 성주신(城主神)이 있다. 집터를 지켜주며 안정된 집터가 되도록 다져 주고 집안의 액을 거두어 주며, 재복을 주기도 하는 터주(지신)와 업신은 집의 광, 뒤뜰 장독대 주위에 있다. 다른 가신(家神)과는 달리 업신(業神)은 구렁이, 족제비, 두꺼비가 업신으로 위해지는 경우도 있다. 가신들이 대체로 수명장수와 평안, 재복(財福)을 가져다주는 반면 변소에 있는 측신(측간신)은 노여움이 많고 사악하여 잘 받들지 않으면 탈을 입는다고 믿어 측간에서는 더 조심하였다. 부엌에는 조왕신이 있다(김명자, 1993). 불신인 조왕(竈王)은 가신(家神) 중 최고의 어른인 성주신(城主神) 못지않게 중요한 신으로 섬겨지며, 불씨 신앙과 관련하여 그 기원이 오래된 신(神)이었다.
무속 신화「문전본풀이†」에는 여산부인이 조왕신이 되어 부엌의 불을 관장하게 되는 조왕신 성립의 내력이 나온다. 흔히 부뚜막 뒷벽 한가운데에 흙으로 작은 턱을 만들고 이 위에 물이 담긴 종기, 쌀을 담은 작은 항아리, 삼베 조각을 담은 바가지 등을 올려놓아 그것을 조왕의 신체(神體)로 삼는다. 조왕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전라도, 충청도 지방에서는 보편적으로 물이 담긴 조왕증발을 조왕의 신체로 삼는다고 한다(신영순, 1994). 조왕의 신체를 이루는 것은 물(水)이고, 조왕이 관장하는 것은 조왕신앙의 중심인 불인 것이다.
부엌은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다. 따라서 음식의 조리와 관련된 불은 매우 중요하며, 그 불을 인간의 의지대로 통제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아궁이이다. 조왕(竈王)은 ‘불과 아궁이’로 깊은 관계를 지닌다. 특히 불은 불이 지니는 신성성(神聖性), 정화성(淨化性), 풍요성(豊饒性), 파괴성(破壞性) 때문에 점차 인격화되면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신영순, 1994).
한국 무속에서의 조왕(竈王)은 화신(火神), 부뚜막신으로 불리며 불을 관장하는 신으로 모셔졌다. 지역에 따라 조왕각시, 조왕할매, 삼덕할망, 화덕장군, 화덕씨, 화덕진군, 화신대장, 화신, 불신 등으로 불린다. 제주도 풍속에 따르면 화덕진군은 옥황의 남청문 밖에 사는 신으로, 인간계(人間界)의 불을 관장하러 왔다고 하였다(김광언, 2000b).
불은 어둠을 밝혀 줄 뿐만 아니라 날것을 익혀 충분한 영양소의 섭취를 가능하게 한다. 불을 이용해서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공간이 부엌이라면 불을 담고 다루어지는 곳은 부엌에서도 ‘아궁이’ 이었다. 아궁이는 불을 지피며 불씨를 얻는 곳이다. 그래서 한국에는 불씨 지키는 일은 매우 소중한 임무였으며, 불씨를 꺼뜨리기라도 하면 집안이 망하고, 잘 지키면 부귀(富貴)를 얻는다는 전설†이 있다. 이렇듯 불지키는 전통은 고대사회의 불씨숭배 신앙에서부터 볼 수 있다. 불씨 숭배는 곧 생식(生食)에서 화식(火食)으로의 전환에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다 준 신앙이라 할 수 있겠다(양종승, 2009).
조왕신은 불의 신(火神)이므로, 불(火)나지 않고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해달라고 모셔졌다. 불에 대한 신성성은 또한 정화력(淨化力)에 있으며 불은 더러움, 부정, 사악함, 부패 등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를 때 관이 나가면 곧바로 아궁이에 불을 때는 관습이 있었다. 이는 습기를 제거하는 소독 작용일 뿐 아니라 시체의 부정을 정화하기 위해서였다. 상가(喪家)에 조문을 갔다 오거나 오랜 여행을 끝내고 돌아 온 사람은 몸에 묻어 있을 부정을 제거하기 위해 먼저 부엌에 들렀다가 방에 들어가는 습속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집에서 음식이 들어오거나 집에서 특식을 만들었을 때 먼저 조왕 앞에 갖다놓았다가 먹었다. 객귀(客鬼)를 쫓아 탈을 없애기 위함이다(신영순, 1994). 부정(不淨)한 것을 물리고 탈을 없애는 불의 정화력(淨化力)은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기능이 있음을 보게 하였다.
조왕은 삼신과 함께 아이를 잉태하게 하고 출산과 육아에 관여하여 돌보며 가정과 아이들의 명과 복을 빌며, 객지에 출타한 가족의 안전을 기원하였다. 집안의 운수, 재물, 질병 등 모든 길흉화복을 관장하며 돌봤다(신영순, 1994). 한국의 관용어 가운데 ‘등 따뜻하고 배부르다.’ 라는 표현이 있다. 불은 등이 따뜻하게 방에 온기를 줌으로 방을 안식처로 만들었고, 매일 가족들에게 줄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열기를 주었다. 돌보는 따사로움이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가옥에서는 안방, 부엌 등의 여성 공간을 집안에서 가장 안쪽인 북쪽 또는 북서쪽에 두었는데 이는 남좌여우(男左女右)라는 음양설(陰陽說)과 일치하는 것으로 왼쪽은 양(陽)이고, 오른쪽은 음(陰)이라 하여 각각 남자와 여자를 상징하는 것이었다(김광언, 1985; 나하영, 2002에서 재인용).
북쪽은 물(水)의 방향으로 생명 잉태의 공간을 상징하였다. 이러한 상징적 방향의 암시로 혼인과 출산의 공간인 안방을 북쪽에 두는 것이었다. 안방은 아궁이의 불길(연도, 煙道)의 거리에 따라 아랫목, 윗목으로 나뉘었다. 아궁이의 불과 불씨는 주거 자체와 내적으로 결부되어, 불의 지속은 가계(家系), 가운(家運)의 유지와 직결되며 불씨의 단절은 곧 가계의 단절을 의미하였다(최인학, 1983; 나하영, 2002에서 재인용). 이처럼 아궁이의 불과 불씨는 집안의 생산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불이 갖는 풍요성을 잘 보여준다.
불신(조왕)이 재물신으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이는 불이 재산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민담에 ‘불씨를 꺼뜨리는 며느리는 곧 재산을 날리는 소박데기감’ 이 되었다(김명자, 1984). 저녁 또는 새벽에 불을 빌리어 주거나 담아오면, 불을 빌려준 집은 복이 달아나고 재수 없는 일이 생긴다고 하였다. 이는 많지 않은 불씨를 남에게 나누어 주어 불이 꺼질 수도 있으며, 이는 곧 불씨는 집안을 흥하게 해주는 복(福)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불은 가족을 돌보고, 재물을 늘게 하며 복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반면 다음과 같은 경우에 불의 파괴성을 볼 수 있었다. 불난 집 사람은 ‘불찍굿’† 또는 ‘불찍앗임’††이라는 무속의례(巫俗儀禮)를 하기 전엔 죄인의 몸이 되어 남의 집은 물론 자기의 집 출입이 금지되며, 불난 집을 다시 고쳐 세울 수도 없었다. 불이 나는 것은 인간계에서 불씨를 좌우하는 화덕진군(火德眞君)의 조화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 불신(火神)의 노여움을 풀고 불씨를 좋게 퇴송하는 의식을 치러야 했다. 이를 ‘불씨를 없애는 굿’ 이라는 ‘불찍굿’ 또는 ‘불씨를 없앰’ 이란 뜻의 ‘불찍앗임’ 굿이라고 한다. 불난 집 사람이 이런 의식 없이 다른 집에 가면, 불신(火神)이 그 사람의 뒤를 쫓아 이웃집으로 옮겨가서 이웃집도 화재가 발생하기 때문에 불이 나면 그날 당장 제를 지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노여움을 풀지 못한 불신이 온 동네에 불을 내는 파괴성을 보였다.
불신(竈王, 火神)은 삼신할머니와 함께 아이를 점지하고, 산모의 태내에서 성장까지 아이의 양육을 관장하는 모성신이었다(이부영, 2012). 그러므로 임산부가 불을 구경하거나 화로를 타넘으면 조왕의 노여움을 사서 유산이 되거나, 태어난 아이가 태독(胎毒)을 앓거나, 경기를 하기도 하고, 몸에 허물이 난다는 등의 금기가 있었다. 또한 닭털, 호박줄, 손톱, 콩깍지, 양념 등 깨끗하지 않은 물건을 아궁이에 태우면, 불신(竈王, 火神)이 노해서 아이들의 몸에 병을 주거나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고 하여 금기시하였다(신영순, 1994). 닭털, 호박줄 등은 탈 때 냄새가 고약할 뿐 아니라 연기도 많아 이를 방지하는 것이었다. 콩깍지는 간혹 콩이 남아 있을 수 있어 이를 태우면 ‘곡식의 씨앗’ 을 없애는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불신인 조왕이 영적인 존재로 신성시되며 인격화한 신으로 섬겨지는 것은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조왕신앙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일본의 창조 신화에는 일본의 불신 가쿠즈치신이 태어나는 과정이 잘 나와 있다. 천상계에 밝음의 세 신이 있었는데, 이 신들이 이자나기(イザナギ, 남신)와 이자나미(伊邪那美, 여신)의 남매신을 낳았다고 한다. 남매신은 지상인 오노고로시마로 내려와 결혼하고, 서로 교합하여 아와지사마, 시코쿠, 오키, 큐슈, 이키 등을 나았고, 또 작은 섬들을 더 낳았다고 한다. 국토 낳기가 끝나자 두 부부신은 바위나 흙의 신, 바다의 신, 항구의 신, 바다(오오우다즈미; 大綿津見神), 산(오오야마즈미; 大山津見神), 물, 바람들의 신을 낳았다. 마지막으로 이자나미가 불의 신 가쿠즈치(軻遇突智, 가쿠즈치노카미; 迦具土神)를 낳다가 음부에 불이 나 화상을 입고 황천국으로 가서 저승과 땅을 다스리는 신이 되었다고 한다(吉田敦彦, 2010).
일본에서는 도마(土間)의 가마도(竈, 부뚜막, 아궁이) 즉 정지 아궁이를 중심으로 집안의 화소(火所)에는 가마도가미 (かまどかみ, 竈神)를 모셨으며 지역에 따라 오카마사마(おかまさま), 코진(こうじん, 荒神)사마 등의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일본의 조왕(竈王)은 지역에 따라 불이나 진화(鎭火)를 관장하는 불의 신이면서 동시에 농작의 신, 가족, 우마(牛馬)의 수호신, 부와 생명을 관장하는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신의 모습을 보인다(남근우, 2005). 대부분 아궁이 근처에 마련된 시렁 위에 부적이나 폐속(へいはく, 幣帛)을 안치한 형태이나, 오키나와 주변의 남서 제도에서는 바다에서 주워 온 세 개의 돌을 아궁이 뒤에 모셨는데 이는 원시적인 아궁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가마도가미(かまどかみ, 竈神)의 신체로 여겼다. 서일본에서는 코진(こうじん, 荒神)사마가 농신(農神)과 불의 신으로 모내기가 끝나고 나면 아궁이에 준비해 둔 모 석 다발을 바치기도 하고, 벼 베기나 보리 베기 즈음하여 처음으로 거둬들인 수지(樹枝, じゅし)를 바치기도 하였다(남근우, 2005). 조왕에게 일 년 농사에 대해 감사하며, 나무의 줄기에서 뻗어나는 가지인 수지를 태우는 것은 조왕이 농신(農神)과 불의 신(火神)의 모습을 동시에 갖고 있음을 보게 한다.
일본의 부뚜막신인 불신(火神)은 12월 24일 하늘에 올라가, 한 해 동안 가족이 벌인 행동의 선악을 보고하고, 1월 4일에 지상으로 내려와 상제(上帝)의 뜻을 전한다고 하여 정초 제사에 불신(火神)을 섬긴 뒤에 조상에게 절을 올렸다(김광언, 2001). 일본의 오키나와에서는 아들 부부가 분가하면 본가의 아궁이에서 불을 붙여다가 새집의 조왕(火神)으로 삼았으며 이사 때에도 화로나 아궁이의 불을 죽이지 않고, 물동이도 물이 담긴 채로 옮겼다고 한다(김광언, 2000b). 또한 오키나와에서는 명절 의례나 가택제(家宅祭)를 지낼 때, 제일 먼저 조왕에게 상을 바쳤으며, 부뚜막 벽 쪽에 작은 돌 세 개를 세모꼴로 놓고 소금 한 주먹을 놓았으며, 명절 및 대소사의 제례를 올렸다(김광언, 2000b). 부뚜막신은 아궁이의 불을 관리하는 불의 신이면서 동시에 잉태와 출산, 육아를 맡는 신이었다. 갓 태어난 아이는 물론이고 망아지도 부뚜막에 인사를 올렸다. 또한 가장과 자녀들에게 명과 복을 주고, 객지에 나간 가족의 안전을 돌보며 집안의 운수를 돕고 잡귀를 쫓으며 질병을 다스렸다. 가족이 죽으면 집안의 부뚜막을 사용하지 않고 마당에 한데부엌을 따로 마련하여 부정이 불을 따라 옮아가는 것을 막고 부뚜막을 새로 갈거나 아예 부뚜막을 헐고 새로 만들기도 하였다(김광언, 2001). 일본의 불신이 가족들을 돌보며, 잡귀를 쫓는 것은 한국의 불신과 같은 상징성이다. 또한 부정을 막기 위한 한데부엌은 지금도 한국의 시골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동식 부엌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중국의 조왕은 하늘의 최고신인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인간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아오라고 보낸 사자라 믿었다. 중국의 조왕은 상류층에서 일반 농민에 이르기까지 정성껏 받들어졌는데, 정월 초하루를 ‘대년(大年)’ 이라 하고, 조왕이 승천하는 날(대체로 12월 23이나 24일)을 ‘소년(小年)’ 이라고 부르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중국의 조왕의 출현을 유안(劉安, 서기전 179~123)은 <회남자(淮南子)>에 “불의 신인 염제(炎帝)가 죽어 조왕이 되었다” 고 기록하였다. 또한 <예기(禮記)>에도 화신(火神)인 ‘축융(祝融)’ 이 ‘조왕의 전신’ 이라 하였다(김광언, 2000a).
중국의 조왕은 조신(竈神), 조왕(竈王), 조왕보살(竈王菩薩), 조군(竈君), 동주사명(東廚司命), 취사명(醉司命), 사명조군(司命竈君) 호택천존(護宅天尊)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불렸으며 호칭에 신(神), 천존(天尊), 보살(菩薩), 왕(王), 군(君), 사명(司命) 등을 통해 조왕의 위상을 알게 하며, 중국에서 조왕신(竈王神)과 사명신(司命神)은 다른 신(神)인데 후대로 오면서 사명(司命)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정연학, 2005). 불신으로서 조왕은 부엌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책임지는 신이었다. 집안에 온기를 주고, 가족들에게 줄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불(火)이 인간의 수명을 좌우할 권한을 갖는 사명(司命)의 역할을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불신인 조왕(竈王)은 가족의 위생과 건강 문제에 밀접했기에 사명신(司命神)과 같은 신(神)으로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섬겼을 것이다.
중국의 조왕제사는 한나라 무제 때(서기전 133)시작 되었고, 물을 신체(神體)로 하는 것이 한국의 보편적인 조왕의 신체라면, 중국의 조왕 신체는 초상(肖像)으로 부뚜막 위에 걸어두고 섬기는 것이었다(김광언, 2000b). 조왕 의례는 곳에 따라 다르나 해마다 12월 23일에 조왕이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가족들의 선악덕행(善惡德行)을 보고하고, 정월 초하루에 돌아온다고 여겨 제를 올렸다(김광언, 2001). 조왕제의 제물은 지역에 따라 엿과 국수, 술, 떡 등을 올린다고 소개하며 엿과 국수를 놓는 지역은 입이 달아서 좋은 일만 보고하고, 잘 먹어 기분이 좋아져 복을 가져오라는 뜻이었다(김광언, 2000a). 김광언에 따르면 지역에 따라 신상의 입에 엿을 바르기도 하고 엿이 입에 붙어서 옥황상제께 가족들의 악행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등 바늘로 조왕 신상의 혀를 찌르거나 아궁이에 술을 발라 혀가 아파 말을 못하고, 술에 취해 횡설수설한다고 여긴 것이라 한다.
중국인은 물을 불의 아버지라고 여겨 물과 불은 상극이면서도 제사에서 함께 모셔지며 물의 상징인 개구리†가 숭배대상이면서도 두려움의 대상인 불의 재앙을 막기를 기원했다(정연학, 2005). 중국에서 불의 성난 피해를 물로 막기 위해 함께 제사를 지낸 모습은 한국에서는 조왕의 신체인 조왕증발에 정화수(물, 水)를 담아 부뚜막 위에 올려놓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중국의 조왕도 한국의 조왕처럼 아이의 건강을 돌보는 신이었다. 아기가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지면 경험이 많은 할머니가 혼을 부르는 의식을 벌이며 아기의 신발을 부뚜막 위에 나란히 놓고, 손을 땅바닥에 쓸며 이름을 부른 뒤 “돌아오너라.” 세 번 읊조린 다음 신발을 아기의 베개 앞에 놓으면 나갔던 혼이 돌아온다고 믿었으며, 강소성에서는 4살이 채 안 된 아이가 병이 나면 외할머니가 사람을 보내서 아이의 집 조왕에게 초, 채소, 과일, 떡 등의 제물을 올리며 제를 지내며 제에 올린 떡은 개에게 주는데 병이 개에게 옮아간다고 믿었다(김광언, 2000a).
한국의 조왕신과 중국의 조왕신은 여성신(女性神)의 특징은 같으나 한국은 여성신의 모습이, 중국은 남성신의 특징이 더 강하다. 한국의 조왕이 부엌과 불을 관장하는 신으로 가신 중 으뜸신인 성주신의 아내로서 부차적인 신이며 조왕할매, 조왕각시 등의 이름에서도 여성신(女性神)의 모습이 강하게 드러난다. 반면, 중국의 조왕(竈王)은 음식을 만들고, 취사하는 불신(火神)의 모습뿐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까지 관장하는 가신(家神)들 중 가장 높은 신으로 불리는 이름에서도 여성신(女性神) 보다는 남성신(男性神)으로 섬겨지는 차이를 볼 수 있었다.
30대 여성의 모래작품을 통해 불의 상징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옛날에는 불을 쉽게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불씨를 관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불을 사용하면서부터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었고, 사람들의 위생도 좋아졌으며 출산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렇기에 불신(竈王)이 가족들의 수명(壽命)을 관장한다고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조왕(竈王)신앙에서의 불신(火神)은 ‘조왕각시’, ‘조왕할매’ 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출산, 육아, 가족들의 안위 등을 맡는 등 어머니의 역할을 한다. 불신(火神)의 주 거주 장소도 부엌의 아궁이로 늘 어머니가 움직이는 모성의 공간이다. 부엌의 냄새는 어머니의 냄새(김광언, 2000b)라고 할 정도로 부엌은 어머니와는 밀접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새로 시집온 새색시는 시어머니에게 불을 다루는 법을 배우며 성숙한 어머니가 되어갔다. 그러나 요즘은 불씨를 정성스럽게 관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불을 대하는 신비스럽고, 진지한 종교적 태도가 사라졌다. 어디서든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불을 얻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굳이 불을 이용해 끓이거나 익히지 않아도 전자레인지(microwave oven)를 이용하면 익힌 음식을 쉽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시간과 정성을 들여 하는 어머니의 역할도 내면의 성숙함이 없는 ‘소녀 엄마’, ‘처녀 엄마’ 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내담자는 2남 2녀 중 둘째로 부가 암으로 내담자 10세에 사망하면서 모가 생계와 자녀 양육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모는 남편의 상실에 대한 충분한 애도 없이 자녀들이 ‘부의 부재’ 를 느끼지 않도록 ‘아빠의 역할’ 에 충실하려 노력하였다. 모는 공무원으로 항상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사회생활에 임하였으며 남편의 부재와 상실에 대한 슬픈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충분한 애도 없이 자녀들에게 강한 어머니의 모습만을 보였다. 내담자가 모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 모는 ‘더 노력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너만 힘든 것은 아니다.’ 라는 말로 답하였다. 내담자는 늘 모의 빈자리를 느끼며 외로워하였고, 결혼생활과 육아 문제 등에 대하여 모에게 조언을 구하면 모는 내담자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는 ‘나약한 딸’ 로만 대하였다. 내담자는 상담 초기 5세 된 딸을 잘 양육하지 못하고 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 우울 감정을 호소하였다. 모래놀이치료를 통해 ‘미성숙한 어머니’ 에서 ‘성숙한 어머니’ 로 심리적 성장을 보였다. 이러한 심리적 성장을 모래작품에 나타난 부엌과 불의 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 1은 일찍 퇴근한 남편과 딸에게 줄 파전을 부치고 우동을 준비하고 있는 내담자의 모습을 표현한다. 이는 모성을 발휘하는 장면이다.
내담자는 “남편이 컴퓨터만 하면 나를 봐주지 않는 남편에게 거부당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화를 내면 남편이 싫어할 것 같아 속으로만 참았다. 남편이 내게 책만 본다며 지적할 때는 억울하고,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더 서운했다. 그런 감정이 쌓이면 남편과 계속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답답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남편이 컴퓨터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책만 보면 남편이 거부당했다고 느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친정엄마도 밉거나 서운한 감정이 덜하다.” 라고 하였다.
그림 2는 23회기의 모래작품으로 “아빠는 요람에 있는 아가에게 책을 읽어주고, 엄마는 딸이 피아노 치는 것을 봐주며 함께 노래한다. 식사를 막 하고, 아직 치우지 않아 설거지가 쌓였다.” 고 한다.
그림 3은 36회기의 모래작품으로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와 땔감을 중심으로 내담자가 직접 갖고 온 색끈과 한지, 빨래집게를 이용해 작품을 제작한다. 작품에서 한지는 천연염료로 염색된 천이다.
내담자를 작품을 제작하며“빨래가 펄럭이는 모습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물들인 천을 말린다. 물들일 천들이 아직 많다. 항아리에 된장과 고추장도 담가 놓았다. 지금은 혼자 있어도 막연히 감사하고, 행복하고, 남편도 좋다. 엄마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겁다.” 라며 행복한 모습으로 모래작품을 만들었다.
아궁이에 넣을 자원이 되는 땔감도 많이 준비해 놓았다. 모래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내담자는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른다. 불을 이용하여 천을 염색한다. 또한, 내담자는 불의 여신 헤스티아†처럼 부엌의 불을 잘 다스리며 돌보는 어머니로의 변환을 보였다. 삼신과 함께 아이의 잉태와 출산, 육아를 관여하며 가정을 돌보는 불신(竈王)신의 생산성과 풍요성을 볼 수 있었다.
그림 4는 38회기로 그림 3과 연결된 작품인 듯하였다. 왼쪽 모서리, 가장 깊은 무의식의 자리에 땔감과 아궁이의 가마솥을 놓았다. 불을 조절하며 다루는 여인도 있고, 떡을 찌고는 아이를 돌보며 가족들에게 먹일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사회가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불의 사용은 쉬워졌다. 불을 쉽게 접하게 되는 만큼 불(竈王, 火神)에 대한 신비로움과 경외심도 우리들의 마음에서 멀어졌다. 모래놀이치료를 통해 내담자의 미성숙한 모성성이 긍정적으로 변환되면서 ‘성숙한 어머니’ 의 모습으로 변환됨을 볼 수 있었다.
한국말에 ‘노기(怒氣)’ 란 표현이 있다. ‘노기(怒氣)’ 는 성난 얼굴빛, 또는 그런 기색이나 기세를 말하는데 여기에 ‘불’ (火)이 결합되면 사람의 감정 상태 즉, 심화(心火)를 표현하게 된다. 길들여지지 않은 노기(怒氣)는 곧 그 자체로 ‘불’ 이 되어 ‘열화(熱火)와 같이 노한다.’ 무의식의 충동에 사로잡혀 조절되지 않는 부정적 콤플렉스(이부영, 2012)가 ‘화(火)’ 로 올라오는 것이다. 부정적인 심화(心火), 즉 마음 안에서 조절되지 않은 치솟는 불(Complex, 火)은 밖으로는 공격적 충동, 파괴적인 충동성으로 불붙어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불사르게 된다. 심화(心火)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심리적으로 깊어지면, ‘갑갑증’ 이 나고 ‘애가 타다’가 끝내는 우울증이 되고, 화병이 된다. 무의식에 원(怨)과 한(恨)의 감정 덩어리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결 론
본 연구는 조왕신앙을 통해 불신(火神)의 상징과 모래놀이치료 상황에 나타난 불의 상징성을 살펴보았다.
한국, 일본, 중국 모두 조왕은 불신으로 정화력(淨化力)을 인정받으며 신성시되며 가신(家神)으로 섬김을 받았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볼 수 있었다. 또한 나라별로 차이는 있으나 조왕(竈王)이 일상생활에서 사람들과 가장 밀접한 신(神)으로 하느님께 가족들의 선행과 악행을 전하고, 가족들의 안위와 아이들을 돌보며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가신(家神)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엌과 불을 담당하는 조왕(竈王, 火)이 가신(家神)들 사이에서 갖는 조왕(竈王, 火)의 위치나 신체(神體)의 모습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한국 민간에서 조왕(竈王, 火)의 신체(身體)로 쌀, 삼베 등도 쓰이지만 가장 보편적인 신체는 증발에 담은 정화수(井華水)였다. 중국에서는 조왕(竈王, 火)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한국에서도 절간에서는 글을 써 붙이거나 조왕(竈王, 火) 그림을 신상(神像)으로 모시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중국과 비슷하였다. 또한 생활 속에서 소중히 다루고 필요한 불(火)을 인격화(人格化) 시켜 수시로 집안의 일을 아뢰고, 제를 올렸다는 점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부분이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할 때도 이전에 살던 집의 ‘아궁이 불’ 을 새집의 아궁이까지 죽이지 않고 옮겨가는 일본의 모습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도 볼 수 있었다. 한국의 마을에서는 흔히 보던 모습으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던 풍습이다. 불신(火神)인 조왕(竈王)을 모시는 데 있어 물(水)을 함께 모심으로 불과 물의 균형을 잡으며 불의 파괴성을 방지하고자 하는 모습도 한국, 일본, 중국에서 동시에 볼 수 있었다.
한국 무속에서의 조왕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火)이었다. 조왕신앙의 중심인 불의 상징성을 신성성과 정화성, 풍요성(생산성)과 파괴성으로 살펴보았다. 조왕은 불신(火神), 부뚜막신으로 불리며 인간계(人間界)의 불을 관장하는 신(神)으로 오랫동안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조왕신은 부정함, 더러움, 사악함, 부패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 있는 정화성(淨化性)이 있으며, 객귀(客鬼)를 쫓아내고 탈을 없애는 벽사의 기능을 하였다. 조왕은 삼신과 함께 잉태와 출산, 육아, 가정과 아이의 명과 복을 빌며, 출타한 가족의 안전을 돌보는 가신(家神)으로 불씨의 단절은 곧 가계(家系)의 단절을 의미하였다. 아궁이의 불과 불씨는 주거 자체와 내적으로 결부되어 있어 집안의 생산성(生産性)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또한 불신은 재물신으로 집안의 불씨는 복(福)과 동일한 의미를 지녔으며 불이 갖는 생산성과 풍요성의 모습이었다. 반면 물이 큰비가 되어 홍수로 파괴성을 보이듯 모든 것을 태우므로 재산과 생명을 뺏는 파괴성을 보이기도 하였다. 제주도의 ‘불찍굿’ 또는 ‘불찍앗임’ 이라는 무속의례(巫俗儀禮)와 임산부가 불을 구경하거나 화로를 타넘으면 조왕의 노여움으로 태독을 앓거나, 유산을 한다는 등의 금기는 불신의 파괴성을 잘 보여주었다.
모래놀이치료 상황에서 나타나는 불의 상징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자녀 양육에 대한 부족함과 죄책감, 친정모에 대한 밉고 서운함, 남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호소하며 우울하다고 하여 모래놀이치료가 진행하였다. 모래놀이치료가 진행되며 내담자는 잘 웃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딸을 잘 양육하지 못하고, 돌보지 못한다는 미안함과 죄책감과 친정모와 남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변화는 모래놀이 작품을 통해 잘 표현되었다. 모성을 발휘하는 작품(그림 1)을 제작하며 내담자는 남편에 대한 불편한 감정과 친정모에 대한 미숙한 자신의 태도를 언어화시키며 자신을 직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림 2에선 부정적 콤플렉스가 돌보고 키우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으로 성장을 느끼게 한다. 그림 3은 불을 잘 다스리며 염색을 하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모습을 표현한다. 직조, 바느질, 옷 만들기, 요리하기, 집 꾸미기 등과 같이 염색은 인류의 역사에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여성의 살림 공예로써 여성들은 자기 성찰과 가치를 탐구하며 협력하고 소통하며 자신의 능력을 나눠주는 공력을 보인다(김주현, 2002)고 하였다. 염색은 규방 문화의 하나로 부덕(婦德)을 쌓으며 지혜와 인내로 생활해 나가는 방법(이미석, 이선재, 2002)이었다. 그림 4는 가족들을 위하여 불을 조절하며 음식을 만들고, 밭에 농작물을 가꾸며 아이들을 돌본다. 내담자는 그림 3의 모래작품을 통해 한 가정의 주부이며 아이들의 어머니, 아내로서 자기를 성찰하고, 가족과 소통하며 지혜와 인내의 어머니로 성장하며 부덕(婦德)을 쌓을 수 있는 내적인 자원을 준비하는 모습을 느끼게 하였다. 성숙한 어머니로서의 모습은 그림 4를 통해 잘 나타났다. 모래작품은 여성성의 영역이며 모성신이 관장(이부영, 2012)하는 부엌의 모습이 변하고, 불을 조절하고 음식을 만들고, 염색을 하는 등의 창조적인 작업으로 변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분석심리학에서 창조성은 여성성과 통하며(이나미, 2016) 이러한 여성의 창조성이 부엌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모래작품을 통해 가족들의 건강과 안위를 주관하며 육아에 관여하는 불신인 조왕(竈王)의 풍요성과 생산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의 민간에선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생기면 불씨가 있는 부엌에 가서 소지(燒紙)하여 재를 물에 타서 마시게 하였다. 이부영(2012)은 한국 샤머니즘에서는 가족의 신체와 영혼을 정화시킬 목적으로 소지(燒紙)를 하였다고 한다. 소지(燒紙)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연기가 위로 오르면 경쾌로 건강해진다는 뜻이고, 아래로 내려가면 중압으로 질병을 의미하였다. 이처럼 태우는 작업에는 정화(淨化)와 해방의 기능이 간여한 것으로 물질적, 현세적인 것의 영적 변환, 하나의 영화과정(靈化過程, Vergeistigungs prozess: 이부영, 2012)이었다.
불이 사람의 감정 상태와 결합하면 심화(心火)가 된다. 삶에서 겪는 서운함, 억울함, 후회, 우울을 넘어 원(怨)이 되고 한(恨)이 되면 그 감정적 응어리가 오랫동안 억압되어 무의식에 남아있게 된다. 무의식에 있던 원(怨)과 한(恨)은 부정적 콤플렉스가 되어 심화(心火)가 되는 것이다. 심화(心火)를 치료하지 않으면 마음의 불은 화살이 되어 주변으로 투사된다.
심화(心火)를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래놀이치료를 한다. 모래놀이치료는 마음의 불을 다루며 모래작품은 심화(心火)가 주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같은 불이라 해도 ‘불같은 정열’, ‘불같은 열정’ 등은 신념, 감정 등이 뜨겁고 강렬함을 말한다. 원(怨)과 한(恨)의 심화(心火)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취의 동기가 되어 자신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조절된 심화(心火)는 에너지가 되어 창조성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