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하루 평균 26.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전체 사망원인 중 5위를 차지하며 OECD 회원국 가운데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자살은 자살자 개인의 비극으로 끝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가족구성원의 자살로 인한 죽음은 단지 갑작스럽고 때 이른 죽음일 뿐만 아니라 유가족들에게 큰 충격과 정신적 상처를 주는 외상적 사건이다 (Cobain & Larch, 2006; 이혜선, 육성필, 김신향, 2010 에서 재인용). 남겨진 가족들은 고인과 작별 인사를 할 기회조차 누리지 못하며, 고인 없이 생활에 적응할 심리적 준비의 기회도 제공받지 못한다. 더욱이 자살로 인해 가족을 잃는 경험의 가장 혼란스러우면서도 분노케 하는 측면 중 하나는 그 자살이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행위라는 점이다. 이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유가족들로 하여금 자살자가 자신들을 거부했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자살자가 자살에 이르기 전에 도움을 청하고 싶은 가족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에서 오는 무력감과 관련이 있다(Berman & Jobers, 1991; 장성수, 1998 에서 재인용).
한편 자살자의 형제들은 그들의 슬픔을 솔직하게 가족에게 털어놓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자살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부모와 남은 형제 사이에 커다란 대화의 장벽이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왜 자녀가 자살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반면에, 형제들은 정보에 접근하는 경로가 달라서인지 왜 자신의 형제자매가 자살했는지에 대한 독자적인 이론을 구축하였다. 부모 사이에서 자살의 이유가 화제로 오르내리면 형제들은 그걸 감추고 회피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자살관련 정보를 말하지 않았는데, 그 정보가 부모의 고통을 가중시키거나 부모들이 자살을 막지 못한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부모와 함께 사는 형제들은 부모의 감정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으며 형제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절제하였다. Rostila, Saarela, Kawachi (2014)는 자살로 성인 형제를 잃은 유가족과 다양한 사인으로 사망률 사이의 연관성을 18년간 추적 조사에서도 형제의 자살 위험을 높이는 유의미한 요인이었으며, 형제의 죽음을 경험한 6,833명의 남성과 6,810명의 여성 중 각각 357명과 21명이 나중에 자살하였다. 이러한 영향력은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욱 뚜렷하게 관찰되었다. 유가족들의 반응은 고인과의 관계 뿐 아니라 자살에 대한 해석, 주변의 반응 등에 따라 달라지며, 그만큼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쉽지 않다. 따라서 자살유가족 지원 정책은 개별 유가족의 특수성에 대한 사전 평가를 반드시 필요로 하며, 유가족의 특성에 맞게 섬세하게 계획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Maple, Edwards, Minichiello, & Plummer, 2013).
방 법
자살 유가족의 애도과정의 경험을 검토하고 경험적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것은 도움이 되는 요인들을 토대로 자살유가족의 삶의 재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자살 유가족의 슬픔의 반응과 죽음의 의미와 같이 특정 현상이나 사건을 이해하는 데에는 질적 연구가 적합하다. 질적 연구방법은 설명과 이해를 중요시하며 주된 목적이 예견과 통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의 의미를 이끌어내어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에 있다(나수현, 2006). 사례연구는 복잡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하나 이상의 심층적 연구를 통해 현상을 새롭게 보고 통찰력 있게 살펴볼 수 있다. 본 연구가 형제자매의 자살 후 참여자의 경험으로 하고 있으므로, 귀납적 탐구의 특성으로 사례연구방법을 사용하였다(RobertK, 2013).
참여자들은 고인과의 가족관계와 사별 후 경과기간이 서로 상이하였다. 사례 특성 상 교내 게시판에 공고문을 올리거나 연구자 개인의 인맥을 활용하여 소개받았으나 2명의 참여자가 중도 철회하였고 1명은 중독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연구 참여자로 섭외한 것은 이러한 상이한 요소에도 불구하고 자살 유가족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였던 의미를 도출하고자 함이었다. 연구참여자들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참여자 성별 | 연령대 | 자살방법 | 자살자와의 관계 | 자살시기 |
---|---|---|---|---|
참여자1 (여) | 40대 | 음독 (농약) | 오빠 | 7년 전 |
참여자2 (여) | 40대 | 액사 (목맴) | 오빠 | 13년 전 |
참여자3 (여) | 30대 | 음독(부동액) | 사촌여동생 | 8개월 전 |
면담은 2015년 4월 15일부터 2015년 8월 31일시점부터 참여대상자 모집 후 선정된 경우, 바로 심층면담 일정을 잡았다. 참여자에 편의와 거주지를 고려해 가까운 상담실 또는 자택에서 1:1개별 면담하였다. 면담시간은 집중력을 감안하여 회당 2시간을 넘지 않았고 이미 언급했던 주제가 반복되면서 더 이상 새로운 자료가 나오지 않아 충분히 포화되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종료하였으며 모든 사례가 2회면담으로 종료되었다. 주제의 특성상 사건 이전의 고인과의 경험과 이후의 경험들을 자유롭게 연상하며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전개하였다. 언어적 자료의 확충을 위해 이야기의 “좀 더 자세히 얘기 해주시겠어요?” 추가 질문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면담은 선행 연구 및 저널과 문헌들을 고찰을 토대로 미리 작성된 반구조화 질문지를 문항과 추가적인 질문으로 진행되었다. 학문적 배경이 같은 연구자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검토하게 한 후 이후부터 연계성을 고려하여 공통 주제로 묶고 하위주제를 평정하고 결정했다. 자료의 분석 시 사별에 따른 애도과정에 수반되는 심리적, 정서적, 신체적 차원의 개인 내적 영향과 사회문화적 영향 그리고 영적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분석 재료는 면담녹음 파일을 바탕으로 작성된 녹취록과 면담 외에 연구 참여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하여 고인의 기록 등을 추가로 수집함으로써 다양한 자료를 획득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결 과
참여자들의 사건 후 개인 내적 경험을 분석한 결과, 19개의 하위 주제가 도출되었고, 이것은 6개의 상위주제와 3개의 핵심주제로 요약되었다. 이는 표 3에 요약되어 있다. 참여자 별로 개인 내적 경험에 큰 차이가 있었으므로, 이에 대한 근거자료는 다음과 같다.
참여자들은 사별 후에 많은 죄책감을 남긴다. ‘좀 더 ...했어야 하는데’ 죽음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는 그 사실에 몰두하게 한다. 또한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자기살인이라는 방법으로 떠나버린 이유를 찾아야 했다. 외상적 죽음에 충격으로 죽음의 이유를 이해해야만 그제야 떠나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살에 원인에 대해 ‘고인 탓’, ‘내 탓’, ‘생모 탓’ 이라는 의미진술이 도출되었고 나름의 방법으로 애도를 하였다. 참여자2는 어머니가 암 선고 후 투병 중이던 가중될 슬픔으로 말미암아 오빠의 사망을 비밀로 하고 억압된 애도과정은 어느 날 지하철 안에서 불쑥 터져 나왔다. 유가족들은 형제자매의 자살을 가족만의 비밀로 간직해야만 했다. 가족들은 장례절차도 없이 서둘러 시신을 화장하여 유골 항아리를 화장터 근처의 땅에 묻었다. 드러낼 수 없는 죽음이라는 이유로 유가족들은 슬퍼해야 할 시간도 빼앗겼다. 유가족들은 사회적 수치심과 낙인으로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상실감 해소와 애도는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윤명숙 외, 2010; John, 1998, 2004). 애도의 기능을 표출할 수 있는 장례절차와 같은 사회적 관습은 결여되거나 단축되었다. 참여자 1은 어린 자녀들에게 외삼촌의 사망 이유를 사고사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친정 엄마는 시장 상인들에게 자녀의 수를 줄이고 자살한 오빠에 출생도 죽음의 정보도 없이 이야기하였다.
참여자들은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삶을 정의 내리고 현실에 더욱 충실할 수 있었으며, 세속적 가치에서 사람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진술하였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사건 직후가 아닌 오랜 시간 후였으나, 참여자들은 이 앎을 고인이 주고 간 선물처럼 가치 있게 여기고 있었다.
핵심주제 | 상위주제 | 하위주제 |
---|---|---|
실존적 해석 | 신에 대한 의지 | 열려 있는 문 |
삶의 몫 | ||
전시될 수 없는 인생 | ||
달라진 인생관 | 심플한 삶에 정의와 현실에 충실함 | |
세속적 가치에서 사람의 중요함을 깨달음 | ||
삶을 향한 각오 |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 | |
가족의 소중함 |
삶에 대한 정의가 내려짐으로써 참여자들은 후회 없이 삶을 살고 싶은 동기가 생겼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고, 남은 가족들을 보살피는 데에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였다. 특히, 자신보다 더 큰 충격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부모와 다른 형제자매를 보살핌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애도에 도움이 되었다.
논 의 및 결 론
본 연구는 자살 유가족이지만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였던 자살자의 형제자매의 애도경험의 본질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형제자매를 자살로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유가족 3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실시하였고, 개인 내적, 사회적, 및 영적 차원에서 사례분석을 실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애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인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졌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참여자의 개인 내적 경험을 분석한 결과 19개의 하위 주제가 도출되었고, 이것은 6개의 상위주제와 3개의 핵심주제로 요약되었다. 믿을 수 없음, 죄책감, 후회와 번민, 악몽, 죽음의 냄새와 소리 그리고 느낌, 자살이 선택가능한 일임을 앎, 만연한 자살 사고, 고인 탓, 내 탓, 가족 탓, 사회 탓, 물리적 환경 탓, 요란하게 슬퍼하기, 애도하지 않기, 자기방식대로 애도하기, 비밀로 하기, 이 악물고 무조건 참기, 빨리 잊으려고 노력하기, 티 안내기와 같은 하위 주제가 도출되었고, 이것은 죽음의 공포, 자살사고, 이유 찾기, 각양각색의 애도, 거리두기와 같은 상위주제로 요약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위주제는 정서적 혼돈, 허무한 귀인, 나름의 애도라는 핵심주제로 요약되었다.
둘째, 사회적 경험을 분석한 결과 11개의 하위주제가 도출되었고 이것은 4개의 상위주제, 그리고 2개의 핵심주제로 요약되었다. 죄책감과 함께 둥지 튼 수치심, 사람들에 해석에 노심초사, 수군거리는 시선, 울음을 틀어막음, 밝히기 어려운 사망의 이유, 홀로 감내한 시간,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티 안내기, 가족의 비밀로 하기, 의도된 시끌벅적한 장례식, 함께 하는 활동을 증가시킴, 알면서도 모른 척 해주는 이웃이라는 하위 주제가 수치심과 낙인, 나눌 수 없는 아픔, 비밀주의, 이웃의 점잖은 위로와 지지라는 상위주제로 요약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사회적 소외와 사회적 지지라는 상반되는 두 핵심주제로 요약되었다.
자살 사별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깨닫고 사회적 관계 내에서 형제의 자살은 비밀이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살인사건 피해유가족의 경험에 대한 연구(김태경, 2012)에서 이러한 사회적 낙인이 주변인에 의한 것만이 아니고 유가족 스스로에 의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점이 주변의 위로를 얻기 어렵게 했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감정을 감추는 양상을 보였다. 낙인을 피하고 자살의 전염성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에 집중하였다.
셋째, 자살자의 형제자매들의 영적 경험을 분석한 결과 7개의 하위주제가 도출되었고 이것은 3개의 상위주제, 그리고 1개의 핵심주제로 요약되었다. 열려 있는 문, 삶의 몫, 전시될 수 없는 인생, 심플한 삶에 정의와 현실에 충실함, 세속적 가치에서 사람의 중요함을 깨달음,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하위주제가 도출되었으며, 이것은 신에 대한 의지, 달라진 인생관, 그리고 삶을 향한 각오라는 상위주제로 요약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실존적 해석이라는 단일 핵심주제로 요약되었다.
형제자매들은 사건 경험 후 타인에 대해 그들 개인 만에 고유한 특성을 인식하였다. 타인에게 무엇인가 주거나 헌신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연구에 기여하고자 하는 참여자들에 마음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참여자들에게 사랑했던 형제의 자살로‘왜 누군가는 죽기를 원하며 그들에게 죽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도록 강제하였다. 이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 사이에서 그들의 경험을 둘러싼 생명과 세계를 숙고하게 하였다. 삶의 유한성과 타인에 대한 심리적 수용성을 증가시켰다. 사별 후 심리적 성숙은 인간에 대한 이타적인 마음이 대표적인 긍정적 변화였다. 이와 같은 변화는 긍정적 변화와 함께 부정적 변화도 함께 보고했다. 예를 들면 참여자 2는 ‘힘든 일들을 겪다 보니까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졌다’는 진술을 했다. 대인관계에서 감정을 공유하는데 어려움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Linehan, 1983; Robert I. Simon, 2011, 2013).
넷째, 자살 사건 후 애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인을 분석한 결과 참여자들이 애도과정에서 가용한 지지자원으로는 능동적으로 지역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받은 경우에 더 효과적이었다. 그 뒤를 이어 시간의 경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종교적 배경이 보호기능으로 작용하였다. 대부분 선행연구(김가득, 2012; K Dyregrov & A Dyregrov, 2005; Jordan, 2001)에서 나타난 바와 유사하게 자살자의 형제자매들은 사건 후 사회적 낙인, 죄책감, 우울, 자살사고와 같은 복합적인 슬픔 증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자살자가 평소 알코올 남용 문제로 가족의 골칫거리였던 사례에서는 죄책감을 보고하지 않았다. 이와 유사하게 Tall, Kolve 와 Schut(2001)는 알코올 남용자의 자살유가족들이 그렇지 않은 가족에 비해 죄책감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는 것을 발견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자매의 맥락에서 지켜본 부모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는 훨씬 더 크고 고통스러워했다고 공통적으로 보고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자살을 경험한 형제자매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연민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리적 고통으로 일상생활에서 어려움과 불면증과 악몽으로 정신적 스트레스에 직면해야 했다. 애도기간에도 개인 간 차이를 나타 내었는데 사건 후 많은 시간이 경과한 참여자의 경우에도 오랫동안 억눌러온 고통을 십년이 지나서야 드러냈다. 따라서 지연시켰던 애도과정은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났다. 상실에 슬픔을 애도하는 과정에서 회복으로 촉진시키는 요인으로 종교배경, 사회적지지망 여부가 중재요소로 작용하였다. 또한, 가족 구성원들 나름 대로에 방법으로 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도과정에서 종교의 역할과 의사소통이 중요했다.
이상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자살 유가족 지원을 위한 제언점을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살시도자 가족 단위의 개입이 필요하다. 본 연구 참여자의 사별 형제들 모두 사망 전에 자살시도 경험이 있었다. 자살시도자의 재시도 가능성이 높은 위험군이라는 연구결과(김미영, 전성숙, 김경희, 2013; 김유진, 2013; 신명희, 신수진, 2013; Kim, 2009)와 같이 반복된 자살시도는 자살위험을 높였다. 현재 응급실기반 자살시도자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가족을 참여시켜 개입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지역주민의 자살예방교육에서 자살유가족의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이웃의 관심 필요성이 포함되어야 한다. 자살 유가족에게 어떤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지 정보를 제공하고 지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사회는 타인의 상실감에 대처하고 치유를 돕는 방법이 익숙하지 않아서 애도를 돕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어있지 않다(John, 1998, 2004). 한국인이 경험하는 비애경험의 양상을 탐색한 정형수 등(2014)의 연구에서도 우리나라의 사별자의 경우 개인적인 감정은 쉽게 무시되는 경향이 있고 사별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공유하는 것을 기피한다고 나타났다.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 애도자의 경험에 영향을 주게 되어 슬픔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어려운 양상을 보인다고 했다. 참여자들은 우는 모습이 보기 싫다거나 마음속으로 슬퍼하라는 충고를 받는 반응을 경험하였다. 우리 주변의 잘못된 통념들이 되풀이되면서 혼자서 견뎌내야 하는 고립과 단절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요소가 애도를 방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고 자살유가족 지원을 위한 서비스 분리 운영이 필요하다. (이종익, 2012)의 연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낙인감 없이 유가족 개인의 차별화된 개입이 중요하다. 현행 자살 예방센터의 인식개선 예방홍보 사업 및 자살시도자 상담, 유가족 관리 등이 소수의 인력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기간에 걸쳐서 애도기간이 필요한 만큼 연령별, 유가족의 특성에 따른 공간을 할당하고 프로그램 구성이 촉구된다. 본 연구에서는 자살자가 미혼이었으나 기혼자의 경우 그 유자녀인 어린이와 청소년이 성장하면서 발달과업 주기에 따라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위기로 느껴질 수 있다. 유가족 주체가 이러한 도움을 필요로 할 경우 종결의 기간 없이 극복하고 이겨 나갈 수 있도록 서비스 제공 체계가 필요하다.
넷째, 유가족을 돌보는 서비스 전문가의 교육에 국한하지 않고 가족 내에서 다른 가족을 돌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한다. 본 연구에서도 다른 연구들(김가득, 2012; 윤명숙 등, 2010)과 같이 형제의 맥락에서 자녀를 잃은 부모가 경험하는 충격은 더욱 심각했다. 자살자와 동거가족으로 생활하던 부모가 사건에 직면하면서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고 슬픔과 절망은 극심했다.
즉,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동거 형제 또한 위기대처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동거 형제 유가족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살자의 동거가족이 경험한 충격과 어려움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본 연구의 참여자들은 자신이 이룬 가정에 가족을 구성하고 있는 성인 형제자매였다. 그러나 경험한 충격의 파급효과를 살펴봄으로써 이들 역시도 관심과 주의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형제의 자살이라는 위기를 경험하면서도 가족들을 위험 요소로부터 돌보고자 노력하였고 더 큰 충격으로 혼란스러워하는 남은 형제를 돌보고 도움을 제공하였다. 가족의 위기대처 능력 향상의 필요하다는 전석균과 박봉균(2014)의 연구결과의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본 연구의 제한점과 후속연구를 위한 제언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본 연구 참여자 모집의 어려움으로 연구 대상의 수가 충분하지 못하였다. 자살에 대한 심각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나 실제로 유가족을 만나고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금기시된 문화 특성상 쉽지 않았다.
둘째, 본 연구 참여자들은 자신의 가정을 구성하고 있는 형제 유가족이었고 여자 성인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성별에 차이가 반영되었을 소지가 있다. 향후에 다양한 연령과 남자 형제 경험을 기반에 둔 실증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셋째, 연구 참여자 의미진술을 추출 시 본인의 진술 의도와 부합하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미가 다른 진술이 같은 범주에 묶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넷째, 참여자 중 한 명은 자살자가 유가족의 형제자매가 아닌 사촌 사이였다. 물론 형제자매처럼 긴밀하게 성장해왔다는 점에서 경험이 유사할 가능성은 있으나, 참여자 가족들의 반응은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이것이 참여자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행사하였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사별 후 경과된 기간을 통제하지 못하였다. 두 명의 참여자는 사별 후 수년이 경과된 상태였지만 한 명은 사별 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경험이 상이할 수 있다.
이러한 제한점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자살자의 형제자매가 사건 후 무엇을 경험하는지에 대해 조망한 국내 최초 연구라는 점에서 의의가 적지 않다. 자살자의 형제자매도 부모나 자녀 못지않게 상당한 충격을 경험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이들의 경험에 대해 깊이 있게 조망하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 본 연구 결과 자살자의 형제자매들은 다른 유가족들의 지지자원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지지체계가 되어주었고, 희생으로 여기기보다는 그 과정을 통해 삶의 또 다른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는 것으로 나타났음을 감안할 때, 자살자 유가족의 지원 시 형제자매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나머지 가족의 회복을 촉진하는 식의 전략이 매우 큰 도움이 되리라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