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관계 선택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았던 청소년기와 달리 대학 생활, 아르바이트, 직장 생활 등의 다양한 환경 변화에 직면하며 기존과는 다른 대인관계 양상에 적응해가는 시기이다. 특히 서미례(2007)는 초기 성인기를 개인이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관계 중 이성 관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기라고 하였는데 실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학교생활을 통해 가장 하고 싶은 경험’을 물어본 조사에서 30%가 넘는 학생들이‘이성 교제와 대인관계’라고 답하는 등 이성 관계는 이들의 주요 관심사임을 확인할 수 있다(오은정, 김민선, 정소라, 2015).
하지만 이성 관계가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2016년 연인과의 관계에서 15,675명의 강력 범죄가 발생했음이 밝혀졌고 데이트 폭력의 또 다른 유형으로서 집착, 통제 행동에 대한 피해를 경험한 사람도 높은 비율을 보였다(법무 연수원, 2018; 손문숙, 조재연, 2016). 이에 연인과의 역기능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적응적 행위들의 원인을 찾고 예방하는 것은 중요한 일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최근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 중 하나로 관계중독(Relationship addiction)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관계중독은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관계임을 알면서도 함께 해야 한다는 신념에 빠져 자신의 행동,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Martin, 1990). 박한나(2015)는 이에 대해 친밀관계를 중독적으로 추구하여 관계의 질 뿐 아니라 개인의 삶의 질을 저하하는 병리적 관계로 설명하였으며, 이은주(2014)는 대인관계에 집착하며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워하는 심리적 현상이라고 하였다. 관계중독의 원인과 관련된 다양한 선행 연구를 살펴보면. 어린 시절 부모와의 경험과 관계중독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연구(김은경, 2016; 박연주, 2008)가 많으며 이 외 다양한 연구들에서는 아동기 외상 경험과 관계중독과의 관련성을 밝혀냈다(김가령, 박준호, 이민규, 2018; 손승희, 2017; 김수민, 2016; 이태영, 2011). 외상 역동(traumagenic dynamic)모델에 의하면 아동기 학대는 자기개념, 인지적, 정서적 측면에서의 왜곡 등 개인의 심리적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하며 외상 경험으로 인해 형성된 부정적인 자기개념과 그로 인한 인지적 왜곡 등이 관계중독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예상해볼 수 있다(김해랑, 홍혜영, 2017). 그리고 이러한 학대 경험 중 정서적 학대는 관계중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아동에게 심리적 해를 입히는 부모의 행동 패턴으로 무시, 거부, 고립화, 타락화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Garbarino, Guttman & Seeley, 1986).
선행 연구를 살펴보면 정서적 학대는 개인의 불안, 우울, 대인관계 문제, 낮은 자아존중감 등에까지 영향을 미쳐 성인기 적응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등(김해랑, 홍혜영, 2017; 석애란, 김영근, 2018; 김아다미, 2001) 다른 유형의 학대보다 아동의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안동현 등, 2003; Claussen, Crittenden, 1991). 이러한 아동기 정서학대 경험과 관계중독의 관련 연구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관계중독의 기저를 밝히고자 하는 관심이 높았으며 학자들은 내면화된 수치심과 정서 조절에 집중했다(김은경, 2016; 박해온, 2019; 손승희, 2017; 송연주, 2019).
하지만 이는 관계중독의 본질적인 측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해주지 못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관계중독은 연인관계 등 특별한 관계에서 경험하는 것이나 정서 조절 곤란과 내면화된 수치심은 일반적인 다양한 관계에서도 발생할 수 있으며 특히 정서 조절 곤란은 다양한 정신 병리와 함께 발생하는 것으로 관계적인 측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관계중독 양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연인관계에서 경험하는 비합리적 신념과 이들이 가진 정서적 특성인 공허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연인관계에서의 비합리적 신념은 관계신념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이 경험을 통해 형성한 자신만의 인지 도식, 관계에 대한 기대, 태도, 기준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Stackert, Bursik, 2003), Eidelson과 Epstein(1982)은 친밀관계에서의 5가지 비합리적 신념을 언급하였다: 첫째, 연인 간 의견 불일치는 곧 관계를 파괴한다는 신념, 둘째, 이성 관계에서 서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욕구를 알아차려야 한다는 신념이다. 셋째, 파트너의 태도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며 이로 인해 문제가 생겼을 때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으며(Hurvitz, 1970), 넷째, 서로 성적 완벽감을 주어야 한다는 것, 다섯째, 남성과 여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연인관계에서의 비합리적 신념들을 살펴보면 이는 가까운 관계인 타인에 대한 융합과 분리, 개별화와 관련된 측면의 문제를 내포하는 것으로써 관계중독 양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특징과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관련된 선행 연구를 살펴보면 양서연(2011)은 이성 관계에 있어 이러한 비합리적인 신념은 관계에서의 만족감을 낮출 뿐 아니라 갈등을 일으킨다고 하였으며 Whisman과 Freidman(1998) 또한 관계에 대한 이러한 비합리적 신념이 연인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하였다. 이러한 선행 연구들을 통해 관계신념과 관계중독의 관련성을 예측해 볼 수 있으나 아직 관계신념과 관계중독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연구는 없다. 또한 대부분의 연구는 연인 간 1:1 관계에서 경험하는 신념 혹은 생각들을 다루기보다 이성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 또는 다양한 관계에서의 부적응을 다뤄왔기에 연인관계에서의 비합리적 신념과 사고가 어떻게 관계중독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해주고 있지 않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어린 시절 학대 경험이 어떻게 연인관계에서의 비합리적 사고들을 통해 관계중독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관계중독에 영향을 주는 변인 중 정서적 측면에서 공허감(emptiness)을 얘기할 수 있다. 서다연(2018)은 공허감을 마음이 텅 빈 듯한 느낌과 어떤 일을 해낼 수 없다는 의기소침함이 주가 되는 감정이라 말하였다. 대상관계 이론을 통해 이를 설명한 Kernberg(1985)는 공허감을 자기 표상, 대상 표상 간 정상적 관계를 맺지 못해 생기는 감정으로 보았으며 Lancer(2014)는 양육자로부터 실제 자기를 부정당하고 공감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경우 발생하는 정서가 고립감, 공허감으로서 이는 아동의 개별화를 방해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결과들을 통해 공허감이 관계중독에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지 예측할 수 있으며 또 다른 선행 연구들에서도 이들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김택호와 정형화(2019)의 사이버 관계중독에 관한 연구에서는 사이버상에서의 관계중독을 자신의 공허함, 외로움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으로 설명하였고 Martin(1990)은 이들은 혼자가 된다는 두려움이 너무 커 다른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결국에는 상실감, 절망에 빠지게 됨을 밝혔다. 이 외에도 다양한 연구들에서‘심리적 허기’,‘미완성’,‘허전함’이라는 용어로 관계중독을 보이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공허함이라는 정서를 표현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으나(이수현, 2009; 이의선, 2004; 한진주, 2007), 공허감과 관계중독 사이 관계를 직접적으로 살펴본 연구는 찾을 수 없었다. 이에 공허감이라는 감정의 허기가 어떻게 관계중독에 영향을 주는지 탐색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즉, 본 연구는 정서적 학대와 관계중독 사이의 관계에서 공허감과 관계신념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며 특히 관계에 대한 어떠한 비합리적 신념이 관계중독에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고자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설정하였다.
<연구가설1> 정서적 학대와 공허감, 관계신념, 관계중독은 유의한 정적 상관을 보일 것이다.
<연구가설2> 정서적 학대와 관계중독 사이의 관계에서 관계신념과 공허감이 매개효과를 보일 것이다.
방법
본 연구는 1회 이상 연애 경험이 있는 20대 성인 남, 여 402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성별 분포는 남자 198명((49.3%), 여자 204명(50.7%), 연령은 20-24세가 198명 (49,3%), 25-29세가 204명(50.7%)으로 나타났다.
정서적 학대.고성혜(1992)가 아동 학대의 개념을 규정하고자 제작한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방임 척도 중 정서적 학대 척도 24문항만을 사용하였다. 동기로서의 학대, 결과로서의 학대, 행동 차원의 학대라는 세 차원으로 구성되어 18세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응답하도록 하였다. 척도는‘한 번도 없다 (1점)’에서‘자주 경험한다(4점)’까지 4점 리커트 척도로 구성되어 있다. 고성혜의 연구에서 내적 일치도는 .94였으며 본 연구에서의 내적 일치도는 .95로 나타났다.
관계신념 척도.Epstein과 Eidelson(1982)이 개발한 관계신념 척도(Relationship Beliefs Inventory: RBI)를 연규진(2006)이 번안한 것을 연인관계에 해당하도록 수정하여 사용하였다.‘전혀 그렇지 않다(1점)’에서‘매우 그렇다(6점)’의 6점 리커트식 척도의 40문항으로 구성되어 있고 점수가 높을수록 비합리적 관계신념이 높음을 의미한다. 척도는 의견 불일치, 마음 알아주기, 변화 가능성, 성적 완벽주의, 성 고정관념의 5가지 하위요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문항의 내적 일치도는 .76이었다.
공허감 척도.최리라(2014)가 개발, 타당화 하고 서다연(2018)이 재구성한 척도를 요인분석을 통해 수정해 사용하였다. 의미 결여, 통제 결여, 지지 결여 3요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요인 부하량 0.4를 기준으로 문항을 선별하였고 타당성을 확인하고자 실시한 확인적 요인분석에서 수용할만한 결과를 보였다.‘전혀 그렇지 않다(1점)’에서‘매우 그렇다(4점)’까지 4점 리커트형 척도를 사용하였고, 점수가 높을수록 공허감을 더 많이 경험함을 의미한다. 서다연(2018)의 연구에서 내적 일치도는 .85, 본 연구의 내적 일치도는 .97이다.
관계중독 척도.Susan (2011)이 개발한 40문항을 이수현(2009)이 번역 후 요인분석을 사용해 명명한 25문항을 우상우(2014)가 타당화한 척도를 사용하였다. 우상우(2014)는 이수현(2009)이 실시 한 분석을 반복적으로 검증함을 통해 총 10문항을 제외한 30문항의 단일 요인이 적합함을 밝혔고 문항은‘전혀 그렇지 않다’1점에서 ‘매우 그렇다’인 5점까지 5점 리커트 척도를 통해 응답하도록 하였다. 우상우(2014)가 타당화 한 문항들의 내적 일치도는 .90이었으며 본 연구에서의 내적 일치도는 .92였다.
본 연구에서 수집된 자료를 분석하기 위해 SPSS 22.0 프로그램 및 SPSS PROCESS macro(Hayes, 2013)를 사용하였다. 본 연구에서 실시한 구체적인 자료처리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연구에 참여한 대상자들의 일반적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빈도분석을 실시하였다. 둘째, 본 연구에서 사용한 측정용 도구들의 내적 일치도를 확인하기 위하여 측정한 참가자들의 정서학대, 관계신념, 공허감, 관계중독에 대해 신뢰도 분석을 시행해 Cronbach’s α 계수를 산출하였다. 셋째, 변인 간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하여 Pearson 적률 상관 분석을 실시하였다. 넷째, 다섯 가지 관계신념 중 어떠한 비합리적 신념이 정서적 학대와 관계중독을 매개하는지 검증하기 위해 정서적 학대와 관계중독 모두에서 유의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두 가지 요인을 확인하였다. 다섯째, 정서적 학대가 두 가지의 관계신념과 공허감을 경유하여 관계중독에 미치는 간접효과가 유의한 지를 검증하기 위하여 관계신념과 공허감을 잠정적 매개변인으로 상정한 후, PROCESS 4번 모형을 적용하여 전체 간접효과 및 개별 간접효과들의 통계적 유의성을 확인하였다. 각 매개효과의 유의성을 살펴보기 위하여 부트스트랩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부트스트랩 표본 수는 10,000개로, 신뢰구간은 95%로 설정하였다. 여섯째, 매개 모형에 포함된 각 간접효과 간의 크기 차이가 유의한 지를 검증하기 위하여 PROCESS를 사용하여 각 간접효과 간의 크기 차이에 대한 검증을 실시하였다.
결과
정서적 학대는 관계신념(r = .098, p < .05), 관계신념의 하위요인 중에서는 의견 불일치(r = .242, p<.01), 마음 알아주기(r = .144, p < .05), 관계중독( r = .261, p < .01), 공허감(r= .510, p < .01)과 유의한 상관을 보였으며 관계신념은 공허감과 유의한 정적 상관을 보였다(r = .181, p < .01). 아울러 관계중독은 공허감과 유의한 정적 상관을 보였으며 관계신념의 하위요인 중 성 고정관념을 제외한 모든 요인과 유의한 상관을 나타냈다(각각 r= .370, p < .001; r = .355, p < .01; r =.293, p < .01; r = .123, p < .05; r = .294, p < .01).
정서적 학대가 관계신념과 공허감을 경유하여 관계중독에 미치는 간접효과를 검증하기 위하여 SPSS MACRO PROCESS 4번 모형을 사용하여 검증하였다. 총 10,000개의 표본을 사용한 부트스트래핑 (bootstrapping)을 통해 매개효과의 유의성을 검증하였다(표 1), (그림 2).
먼저, 1단계로 정서적 학대가 관계신념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하여, 정서적 학대를 예언 변인으로 하고 관계신념을 준거 변인으로 하는 회귀 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 결과, 정서적 학대의 관계신념에 대한 설명변량은 5.2%이며, 회귀계수는 β = .228(p <.001)로 정서적 학대는 관계신념에 유의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정서적 학대가 공허감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하여, 정서적 학대를 예언 변인으로 하고 공허감을 준거 변인으로 하는 회귀 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 결과, 정서적 학대의 공허감에 대한 설명변량은 26.0%이며, 회귀계수는 β = .510(p <.001)으로 정서적 학대는 공허감에 유의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2단계로 정서적 학대가 관계중독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하여, 정서적 학대를 예언 변인으로 하고 관계중독을 준거 변인으로 하는 회귀 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 결과, 정서적 학대가 관계중독의 분산에 관해 설명하는 변량은 6.8%이며, 정서적 학대의 회귀계수는 β = .261(p <.001)로 관계중독에 유의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3단계로 정서적 학대, 공허감, 그리고 관계신념이 관계중독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하여, 정서적 학대, 관계신념, 공허감을 예언 변인으로 하고 관계중독을 준거 변인으로 하는 회귀 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 결과, 세 개의 변인이 관계중독의 분산에 관해 설명하는 변량은 21.7%이며, 정서적 학대의 회귀계수는 β = .063(ns.)으로 관계중독을 유의하게 예측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관계신념은 관계중독을 유의하게 예측하였다(β = .282, p <.001). 마지막으로, 공허감의 회귀계수는 β = .260(p <.001)로 관계중독을 유의하게 예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단계 분석 결과(표 2), 정서적 학대가 관계중독에 미치는 간접효과의 95% 신뢰구간의 하한값과 상한값은 각각 .187와 .388로 나타난바, 부트스트랩 신뢰구간에 0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정서적 학대가 관계중독에 간접적으로 미치는 간접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함을 시사한다. 5단계에서는 개별 매개효과에 대해 분석하였다(표 2). 첫째, 정서적 학대와 관계중독 간 관계에 대한 관계신념의 매개효과의 비표준화 값은 .092 이었으며, 신뢰구간의 하한 값과 상한 값은 각각 .046과 .148로 나타난 바, 부트스트랩 신뢰구간에 0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정서적 학대가 관계신념을 경유하여 관계중독에 간접적으로 미치는 개별 간접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함을 시사한다. 둘째, 정서적 학대와 관계중독 간 관계에 대한 공허감의 매개 효과의 비표준화 값은 .188 이었으며, 신뢰구간의 하한값과 상한값은 각각 .104와 .282로 나타나서 부트스트랩 신뢰구간에 0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정서적 학대가 공허감을 경유하여 간접적으로 관계중독에 미치는 개별 간접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함을 시사한다.
경로 Effect | 95% 신뢰구간 (bias-corrected) | ||||
---|---|---|---|---|---|
Boot S.E. | LLCI | ULCI | |||
전체간접효과 | 정서적 학대→관계중독 | 0.28 | 0.51 | 0.19 | 0.39 |
개별간접효과 | 정서적 학대→관계신념→ 관계중독 | 0.09 | 0.03 | 0.05 | 0.15 |
개별간접효과 | 정서적 학대→공허감→ 관계중독 | 0.19 | 0.05 | 0.10 | 0.28 |
마지막 6단계로 위에서 제시된 두 개의 개별 매개변인이 가지는 매개효과의 절댓값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한 지를 검증하였다(표 3). 10,000개의 부트스트랩 표본을 통한 분석 결과, 신뢰구간의 하한값과 상한값은 각각 -.208과 .0091로 나타나서 신뢰구간 안에 0이 포함되는바, 두 개의 매개효과 간 강도의 차이는 유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개효과 차이 Effect | 95% 신뢰구간 (bias-corrected) | |||
---|---|---|---|---|
Boot S.E. | LLCI | ULCI | ||
관계신념 -공허감 | -0.10 | 0.55 | -.21 | 0.09 |
논의
본 연구의 목적은 관계중독의 발달에 기여하는 요인들을 살펴보고 이러한 변인 간의 관계를 매개 모형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개념화하고자 함이며 특히, 정서적 학대가 관계중독에 미치는 효과를 어떠한 관계신념과 공허감이 매개하는지를 검증하고자 하였다. 연구는 적어도 1회 이상의 이성 교제 경험이 있는 20대 성인 남, 여 402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연구 결과, 정서적 학대, 공허감, 관계신념, 관계중독 간 유의한 정적 상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서적 학대와 관계신념의 하위요인과의 상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하위요인 중‘의견 불일치’와‘마음 알아주기’요인과 유의한 정적 상관을 보였다. ‘의견 불일치’요인은 연인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지는 것에 대한 모욕감을 느끼고 이를 곧 관계의 불안정성으로 연결 짓는 것이며‘마음 알아주기’요인은 속마음을 직접 얘기하지 않아도 상대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줘야 하며 이를 관계의 친밀성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다(Epstein, Eidelson, 1981). 이러한 결과는 아동기 부모로부터 정서적 지지와 수용을 받지 못한 경험이 많을수록 연인 간 의견 불일치나 연인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상황을 관계의 불안정성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큼을 보여준다. 이는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지 못하고 상대와 융합되어 의존하는 상태로도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결과는 애착 형성 실패나 아동기 대상과의 관계 경험이 비합리적인 신념과 관련이 있다는 여러 선행 연구들과 일치한다(손다슬, 2018; 우상우, 2014).
정서적 학대와 관계중독 사이에도 유의한 정적 상관이 나타났으며 이는 관계중독 양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아동기 정서적 학대와 같은 외상적인 경험을 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고한 Pearson(1991)의 연구, 부모와 안정 애착을 형성한 사람들이 이후 연인관계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Feeny와 Noller (1990)의 연구와도 일치하는 결과이다. 공허감과 관계중독 간에도 유의한 정적 상관을 보임으로써 Adams, Donald와 Robinson(2001)의 내면의 고통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경우 공허감, 상처 등을 타인에게 의존하며 해결한다는 연구 결과와 공허감을 관계 상실이나 안정적 애착 형성 실패로 설명하는 선행 연구를 통해 이들 간의 관계를 추론해 볼 수 있다(Klonsky, 2008; Kernberg, 1985). 마지막으로 관계신념과 관계중독이 유의한 정적 상관을 보일 것이라는 가설 또한 지지가 되었다. 관계신념의 하위 유형들과 관계중독 간의 상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의견 불일치와의 관련성이 가장 높았고, 그다음은 마음 알아주기, 성적 완벽주의, 변화 가능성 순이었으며 성 고정관념 요인과는 유의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연인 간 의견 불일치나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상황들을 상대의 애정, 관계에서의 친밀감 부족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수록 관계중독 양상을 보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관계중독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상대가 없는 자신을 무력하게 보는 경향이 있으므로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더 나아가 일반적인 사건들을 상대의 자신에 대한 사랑의 부족, 즉 관계 종결의 가능성으로 해석함은 이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관계중독의 양상을 심화시킬 수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이는 관계신념이 부부관계에서 역기능적으로 작용해 관계의 만족도를 저하한다는 연규진(2006)의 연구와 일맥상통한다. 또한 성적 완벽주의와 관계중독의 직접적인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선행 연구들은 없지만, 이 역시 상대 없이는 안 된다는 믿음에 상대가 원하는 바를 무엇이든 채워주고자 한다는 점에서 관계의 종결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관계중독자들의 특성과 관련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손승희, 2017; Schaeffer, 2009; Acevedo & Aron, 2009). 마지막으로 성 고정관념은 유일하게 관계중독과 유의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은 변인으로서, 다른 세대들보다 성 역할에 대해 더욱 유연한 사고를 하며 성 평등에 대한 보다 높은 관심이 이러한 결과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추론해 볼 수 있다.
아동기 정서학대 경험이 관계신념과 공허감을 매개하여 관계중독에 영향을 미치는 연구 모형을 검증한 결과, 정서학대가 관계중독에 미치는 총 간접효과가 유의하였으며, 공허감과 관계신념의 개별 간접효과 역시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먼저 공허감을 중점적으로 보면, 정서적 학대 경험은 직접적으로 관계중독에 영향을 주기보다 개인에게 허기, 텅 빈 듯한 마음을 경험하게 하고, 이러한 감정에서 벗어나는 방안으로서 관계중독 양상을 보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어린 시절 아동기의 욕구 충족 실패가 공허감으로 이어진다는 초기 정신분석학자들의 주장(Kreisman & Straus, 2004)과 일치하는 결과이다. 또한 어린 시절의 외상 경험은 진정한 자기와 멀어지게 하여 이를 극복하고자 끊임없이 인정을 추구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로 좌절을 느낄 때 공허감을 느낀다는 Kernberg(1993)의 연구와 맥락을 같이한다.
관계신념의 매개와 관련해서 특히 본 연구에서는 관계신념 중에서도 어떤 특정 비합리적인 신념이 정서적 학대와 관계중독 사이를 매개하는지 알아보고자 두 변인 모두와 상관을 보였던‘의견 불일치’,‘마음 알아주기’요인을 중점으로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정서적 학대가 이 두 가지 관계신념을 경유하여 관계중독에 미치는 간접효과가 유의하게 나타났다. 이는 불안 애착이 높을수록 연인 사이의 의견 불일치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이를 이별을 예견하는 것이나 사랑 부족을 뜻하는 것이라 해석한다는 손다슬(2018)의 연구와 관계중독 양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버림받을 것 같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어 상대와 멀어져 있으면 불안을 경험해 계속해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길 요구한다는 이하람(2016)의 연구와 일맥상통한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의견 불일치’와‘마음 알아주기’는 이러한 상황을 자신에 대한 타인의 애정 부족, 견고하지 못한 관계로 해석하는, 즉 타인과 융합되고 분리-개별화가 되지 않은 상태임을 보여주는 요인이다. 특히 앞서 언급하였듯 의견 불일치 요인은 모독감, 분노와도 관련이 있는 변인으로서 관계에서 의견에 대한 불일치를 경험하며 상대가 자신을 완전히 수용해줘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관계에서 더 분노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며(Foran & Slep, 2007), 관계중독을 보이는 사람들은 혼자라 느끼는 상황에 분노, 절망감을 느껴 더욱 의존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는 연구 결과(Susan, 2011)와 일맥상통한다. 또한 지금까지 정서학대와 관계신념, 관계중독 간 관계를 직접적으로 살펴본 연구는 없지만, 정서적 학대 경험이 있는 아동들이 그렇지 않은 아동들보다 부정적 인지 도식, 비합리적 신념을 갖고 있을 수 있으며 연인관계에서 비합리적인 신념이 관계중독 양상을 보이는 사람이 가진 특성, 신념과 비슷하다는 다양한 선행 연구들을(정정숙, 2006; 황연덕. 이진숙, 2010; 연규진, 2006; Gibb, 2002; Eidelson & Epstein, 1982; Acevedo & Aron, 2009)을 지지하는 결과이다.
마지막으로 개별 간접효과의 크기 차이가 유의한지를 검증한 결과, 관계신념과 공허감의 개별 간접효과 간 크기의 차이는 유의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정서적 학대가 관계신념을 통해 관계중독에 미치는 영향과 공허감을 통해 관계중독에 미치는 영향이 비슷함을 의미한다.
위의 결과들을 종합해 보자면, 아동기 정서적 학대 경험이 관계신념과 공허감을 매개하여 관계중독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아동기 외상 경험은 개인에게 지속적인 공허감을 느끼게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텅 빈 마음을 채우고자 끊임없이 이성 관계에 매달리고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학대를 경험한 모든 사람이 비합리적 신념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아동기 외상 경험은 연인과의 의견 불일치, 상대가 자신의 욕구를 알아주지 못하는 사건들을 관계의 불안정감과 연결 지음으로써 관계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본 연구의 의의는 관계중독의 기저에 접근하고자 한 것이다. 관계중독은 초기 성인기 발달 과업 완수를 저해하는 요인이자 연인 사이 강력 범죄와도 관련이 있는 변인으로서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관계중독은 최근 몇 년 전서부터야 연구가 진행되는 주제로서, 관계중독의 기저에 관해 설명할 수 있는 연구들은 아직 부족하다. 이에 정서적 학대, 공허감과 관계신념이라는 변인들을 통해 관계중독에 미치는 영향을 밝힌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연인관계라는 특별한 일대일 상황에서의 갖게 되는 신념이나 사고 과정에 집중하기보다는 개인이 일반적으로 맺게 되는 다양한 관계에서의 부적응적 행동 또는 이성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 등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연인관계 안에서 경험하는 어떠한 비합리적인 신념과 사고들이 특히 관계중독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힘으로써 관계중독에 대한 임상적 개입 시, 이들의 아동기 경험뿐 아니라 연인관계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관계의 불안정성으로 해석하는 비합리적 신념 간의 연결고리를 끊어주는 것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또한 기존 연구들에서는 관계중독의 원인으로 내면화된 수치심이나 정서 조절 곤란, 주관적 고통 감내력 등을 제시해왔다(이태영, 2011; 최가연, 송연주, 2019; 김세광, 홍혜영, 2018). 하지만 이러한 변인들은 정서적 학대 경험이 어떠한 정서적 측면에 영향을 주어 관계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가, 즉 관계중독에 영향을 주는 개인의 정서적 측면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이에 공허감이라는 변인을 통해 이들 간 관계를 매개하는 감정적 측면에 대해 살펴봄은 의의가 있을 것이다. 또한 관계중독을 경험하는 사람에 대한 임상적 개입 시 이들의 비합리적 신념이라는 인지적 측면뿐 아니라 이들이 경험하는 공허감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본 연구의 제한점과 후속 연구에 대한 제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본 연구는 상관연구로서 여러 변인 간의 관계를 인과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둘째, 모든 척도에서 자기 보고식 질문지를 사용하였으므로 응답자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방향으로 응답하거나 솔직히 반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정서적 학대의 경우 어린 시절의 경험을 회상하여 응답하는 것이기에 그때의 경험을 정확하게 회상해 반응하지 않았을 경우가 있다. 셋째, 정서적 학대 척도에 대해 많은 참여자가 낮은 값을 응답하였다. 이는 실제 그러한 경험이 거의 없거나 외상적인 경험에 대한 부인 혹은 자신의 아동기 양육 경험에 대한 자각의 부재로 인한 것임을 예측해볼 수 있으므로 이에 정서적 학대 경험이 있는 대상을 선별하여 이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넷째, 양적 측정 방식으로만 연구가 진행되었으므로 이후 연구에서는 관계중독양상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개별 사례 연구 등의 질적 연구를 통해 이들이 경험하는 감정, 사고들에 대해 더 깊은 이해와 개입을 위한 구상이 필요해 보인다.
다섯째, 관계중독을 단일 요인으로 보는 척도를 사용하여 성중독, 사랑중독, 사람중독 등의 관계중독 하위요인과 다른 변인 간의 관계를 살펴보지 못하였다. 이에 후속 연구에서 관계중독의 여러 하위요인과 공허감, 관계신념, 외상 경험 등에 대해 살펴본다면 관계중독에 대해 다각도로 접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연구대상을 연애 경험이 적어도 1회 이상 있는 20대 성인 남, 여로 규정하였으나 결혼 여부에 따른 관계중독 양상과 관계신념, 공허감 등의 관계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못하였다. 20대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 그리고 결혼한 부부들을 대상으로 이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한다면 관계 양상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확인해 보며 관계중독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