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G. Jung은 상징이 의미를 함축하고 있을 때 생생하다고 하였다. 모래놀이치료과정에서 작품은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상징이 작용되어 어떤 것이 창조되어 간다고 보았다.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 작품에서 상징이 가진 의미를 통하여 모래놀이치료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볼 수 있다. 모래상자에 모래, 물과 소품의 형태로 만들어질 때 거기에 살아서 어떤 의미로 표현되는 상징은 내담자의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Yasuhiro, Y. & 김유숙, 2005).
Jung은 Symbol이란, Sign과는 다르게 ‘결코 남김없이 말로 다 표현될 수 없는 것, 말로 최선의 표현을 하고도 못다 한 어떤 의미를 잉태하고 있는 것’이라 하였다(이부영, 2014). 상징은 다른 수단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현실의 어떤 숨어있는 참 뜻을 밝혀준다. 이미지, 신화, 상징 등은 무의식에서 아무렇게나 만들어 놓은 창조물이 아니다. 어떤 필요성에 의한 것이거나 나름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신화, 상징 등에 대한 연구는 역사의 여러 조건과 “생긴 그대로의 인간”을 한 단계 더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Eliade, M. 1998). 상징은 직접적으로 표현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이끌어 내는 지름길은 무의식을 표현하는 것이며,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내면의 경험 수준’을 의미한다(Yasuhiro, Y. & 김유숙, 2005). 무의식을 바탕으로 내면의 경험을 표현해낸 것을 상징을 통해 느껴볼 수 있게 된다. 심리학이란 영어로 ‘psychology’ 이며 psycho + logy의 합쳐진 말이다. logy는 학문을 의미한다. psycho는 ‘마음’ 을 뜻하는 영어 단어 ‘psyche’ 에서 유래하는데 ‘psyche’ 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시케 (Psyche)에서 유래한다. 프시케(Psyche)는 그리스어로 ‘나비’와 ‘영혼’ 이라는 뜻으로 ‘영원한 영혼’을 상징한다(이재연, 2016). 이렇게 볼 때 ‘psychology’ 에는 나비, 영혼이라는 의미가 어근(語根)에 함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비는 환경의 순도를 알 수 있는 지표생물 중 하나로 도시에서 나비를 보기는 점점 어려워져 가는 추세다. 사람들은 문명의 세계 속에 살면서 더불어 자연 속에 어울려 살기를 바란다. 나비를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자연친화적이며 깨끗하고 건강한 생태환경을 의미한다. 나비는 친환경이라는 의미를 넘어 문명의 현실을 벗어나서 이상적인 현실을 표현하는 의미를 담는다(최민성, 2005). 나비는 몸이 가벼워서 부서지기 쉽고 날갯짓이 우아하며 가볍게 바람처럼 난다고 하여 가벼움을 나타내기도 하며(양웅, 2014) 동서양에서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나비는 자주 다뤄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한때 정형시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나비가 번데기에서 날아 나오는 것이 죽음과 영혼 등으로 해석되면서 꺼림칙한 이미지로 보였기 때문이다(유옥희, 2018). 한편, 자유로이 날아가는 나비를 통해 고대인들은 초월적인 속성을 발견하기도 하였는데 나비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육체에서 벗어나는 영혼의 자유로움으로 이해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의식이 사라지고 육체만 남게 되는 상황을 영혼이 마치 나비처럼 날아간다고 본 것이다(신동욱, 1992; 이부용, 2017 재인용).
본 연구자는 모래놀이치료 상담사로 입문하며 제작했던 모래놀이 작품에 ‘나비’를 만든 경험이 있었다.
그림 1은 ‘내 안의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내고 한 발 한 발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는 연구자의 소망이었다. 만드는 순간은 나비가 될 줄 몰랐으나 만들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감동이 올라옴을 느꼈다. 그 후 모래놀이 상담 과정에서 내담자들이 상자에 나비를 만들거나, 나비를 소품으로 놓으면 그때마다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로부터 힘을 얻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모래상자에 나타나는 나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내적으로 성장하는 나비의 상징성을 토대로 모래상자에 나타난 나비의 상징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론
본 연구는 나비가 갖고 있는 의미를 종교, 설화, 한국문화를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또한 모래놀이 상자에 표현된 나비의 상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나비는 전 세계에 산다. 나비의 날개는 앞과 뒤 각 1쌍이 있고, 빨대 모양의 입을 갖고 있으며 나선형(螺旋形)을 이룬다. 더듬이는 곤봉 모양으로 끝이 부풀어 있고 몸이 가늘고 털이 없다. 날개에는 작고 납작한 비늘가루로 겹겹이 덮여 있다. 나비는 알-유충-번데기-성충의 4단계의 완전 변태를 하며 유충시기의 탈피는 4회 전후로 한다. 피부는 자라지 않기 때문에 자라면서 피부를 벗는 과정을 여러 번 되풀이한 후, 성충인 나비가 껍질을 찢고 밖으로 나온다. 나비는 대부분 꽃에서 꿀을 빨아먹거나 나무의 수액을 빨아먹고 산다(21세기 웅진학습백과사전, 1980). 대부분 낮에 날고 활동하며 쉴 때 날개를 몸 위로 접어 세우는 특징이 있다(김창환, 1976). 나비는 색상과 무늬가 화려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미(美)를 상징하며(이선순, 1997) 추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에 찾아오는 곤충으로 봄의 전령사라 불린다(한영식, 2014).
불교의 경우 알에서부터 애벌레, 번데기 그리고 완전한 나비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두고 인간이 태어나서 죽은 후 다른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윤회사상(輪廻思想)에 비유하고 있다(Cooper, J. C. 1947). 윤회(輪廻)는 불교의 교의 중 하나로서 부처의 지위("열반")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삶을 반복하여 여기저기로 돌아가며 거듭 살게 된다는 것이다.
불교의식에서 나비춤은 ‘작법(作法)’ 이라 하며 중국의 고승 조식(曺植)에 의해 이름 지어진 것으로, 그림 2처럼 나비모양의 의상을 입고 머리에 고깔을 쓰고 모란꽃을 양손에 들고 추는 춤이다. 부처에게 드리는 한 의식으로 여기기 때문에 관중을 의식하지 않고 추며, 춤의 동작에서 중요한 것은 반신요배(半身搖拜)1 와 양쪽 발을 정자(丁字)로 하여 도는 것이다. 또한, 빠른 동작이 거의 없고 어깨나 고개도 거의 움직이지 않아 조용하고 완만한 것이 특징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6). 나비춤은 선(禪)을 행하는 의식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춤 자체로 불법(佛法)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식으로 여기며 죄를 참회시킨다는 의미로(남인화, 2013) 마치 진리를 찾는 날갯짓으로도 보거나 불교의 세계로 인도하는 춤으로 본다.
나비를 모티브로 한 무가(巫歌)중에 <문굿>이 있다. <문굿>은 망자가 제장(祭場)에 입장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어 신을 맞이하는 절차로 펼쳐지는 의식이다. 무녀는 신(神)광주리2를 들고 양중(兩中, 남자무당)은 두루마기 차림에 고깔을 쓰고, 장구를 어깨에 맨 채 일어서서 서로 한참을 맞춤을 춘다. 현란한 기예를 선보이다가 극락가 라는 축원과 함께 마무리하는데(마소연, 2012) 이 문굿은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는 의미로 보인다. 크리스트교의 경우 나비를 부활의 의미로 본다. 유충이 죽은 것 같지만 고치의 단계에서 그 안에 자신을 감싸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아름다운 나비로 태어나는데 마치 그리스도의 죽음 후의 재생과 부활을 의미한다고 보았다(Cooper, J. C., 1947). 어린 예수는 나비를 손에 잡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그려지는데, 이 때 나비는 그의 부활을 나타낸다. 크리스트교의 성부, 성자, 성령에 비유하여 알, 애벌레, 나비의 셋 중 하나만 없어도 곤충의 생태계가 사라진다고 보고 삼위일체의 의미로 보기도 한다(이영선, 2005). 죽은 것으로 보이던 유충은 감싸고 있던 것을 벗어내고 새로운 모습의 나비로 태어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후의 재생, 부활의 장면과 관련 지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시케(Psyche)3 는 에로스의 어머니이자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질투를 받는다. 사랑의 신인 에로스(Eros)는 엄마의 명령을 듣고 프시케가 가장 볼품없는 인간과 사랑에 빠지게 하려고 찾아갔다가 그녀에게 반해 실수로 자신의 화살에 상처를 입는다. 그 후 프시케는 에로스와 결혼하였는데 에로스를 볼 수 없고 숨결과 손길만 느낄 수 있었다. 에로스는 자신을 눈으로 확인할 생각 말고 있는 그대로 믿고 느끼라고 말하는데, 호기심과 의심에 그 약속을 어긴다. 아프로디테는 그녀에게 여러 시험을 통과하면 에로스를 만나게 해준다고 한다. 온갖 종류의 곡물을 산처럼 쌓아 두고는 해가 지기 전까지 분류하기, 강 건너 숲에 포악한 양떼의 황금 양털 벗겨오기, 험난한 산꼭대기에서 솟아나는 검은 샘물 담아 오기를 시킨다. 그때 마다 개미떼, 강가의 갈대, 제우스의 독수리의 도움으로 시험을 통과한다. 마지막 시험은 지하세계로 내려가 페르세포네 (Persephone)의 ‘젊음의 물’ 또는 ‘아름다움’(Hamilton, E., 2017)을 가져오는 것이다. 에로스(Eros)는 프시케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제우스(Zeus)에게 간청하여 프시케가 신이 되게 한 후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가 기쁨의 여신인 헤도네(Hedone)이다 (Pierre Grimal. 2003). 프시케 이야기는 갖은 고난을 거치고 난 후에야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아일랜드의 신화에서는 통치권의 상징인 마이더 신이 있다. ‘그의 애인은 첫째 부인에 의해 물병으로 변했다. 물병에서 나온 벌레가 아름다운 나비로 모습이 변환되었는데 마이더 신은 그 나비를 보호하였다. 마침내 나비는 사람의 얼굴을 가지게 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다. 그녀의 향기는 배고픔과 목마름을 달래 주고, 날개에서 떨어지는 가루는 모든 병을 낫게 했다(한국문화상징사전, 1995).’ 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기에서 나비는 마이더 신에게 사랑과 보호를 받고 오랫동안 기다린 결과,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로 변환하고 치유의 힘을 얻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인들에게 4대 민간 전설로 손꼽히는 <양산백전>에는 다음과 같은 나비 이야기가 있다. ‘어릴 때부터 남장(男裝)을 하고 자란 축영대가 공부를 위해 산사에 갔다가 양산백을 만나게 된다. 양산백은 축영대가 여인인 것을 알고 사랑을 고백하였으나, 축영대는 부모의 반대로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 그러자 양산백은 상사병으로 죽게 된다. 축영대가 양산백의 무덤 앞을 지날 쯤 제를 지내자, 무덤이 갈라졌고 축영대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후 두 사람은 부활하여 함께 살았다’ 는 내용이다(조희웅, 2017). <양산백전>과 비슷하게 나비 모티브가 되는 설화로는 <자청비 설화>와 <나비가 된 처녀와 총각>이 있고, 무가(巫歌)에는 <문굿>, <치원대 양산복>과 제주도의 <세경본풀이> 등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6).
장자(莊子)의 제물론에 나오는 민담 <호접지몽(胡蝶之夢)>에서는 ‘옛날 장자란 사람이 어느 날 꿈에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다. 꿈에서 깨어보니 자기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왜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혹은 나비가 꿈속에서 내가 된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최효찬, 2014)는 이야기다. 인생의 덧없음을 말해주면서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던 순간을 즐겁게 표현하였다. 장자가 나비인지, 나비가 장자인지 모른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하고, 현재의 모습에서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도 한다. 의식과 무의식 세계를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것으로 자율적이고 조화로움의 상징으로 볼 수 있겠다.
한국의 전설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나비가 된 유래>가 있다. ‘한 여인이 결혼을 하기로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가 결혼 전에 죽자 매일 무덤에 찾아가서 울며 저승에서라도 부부가 되겠다고 빌었다. 어느 날 무덤이 반으로 갈라졌고 여인은 무덤으로 뛰어들었다. 하녀가 급히 여인을 잡았으나 치맛자락의 조각만 남았다. 그러자 치맛자락은 푸시시 사리지고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는 <양산백전>과 비슷한 내용의 전설이다. 지금의 나비는 모두 이때의 나비로부터 번식한 것’ (손진태, 2009)이라고 전해진다. <황나비 무덤> 전설은 ‘황장군 이라는 사람이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이끌고 청군과 용감히 싸우다 전사하였다. 황장군이 죽었을 때 노랑나비 한 마리가 무덤 위로 날아와 조의를 표하여서 이 나비도 황장군과 함께 묻어주었고 이 무덤을 <황나비 무덤> 이라고 불렀다.’ 는 내용이다 (한국문화상징사전, 1995). 이 때의 나비는 죽은 자와 동행하는 의미로 보여준다. 또 다른 나비 이야기는 전국에 걸쳐 분포된 설화의 하나이다. 어느 마을의 처녀가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남자를 잃게 되어 슬퍼한다. 그의 무덤 앞에 엎드려 슬피 울자, 봉분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같이 따라간 다른 처녀가 말릴 틈도 없이 처녀는 무덤 속으로 뛰어들었다. 무덤은 닫혔고, 미처 들어가지 못한 치맛자락이 나비로 변해 날아갔다고 전해진다(한국문화상징사전, 1995). 이처럼 한국의 전설에 나타난 나비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나비로 환생하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한국민속학회, 2008).
나비는 꽃을 좋아하는 곤충으로 오래전부터 서화나 시가의 소재가 되어왔다. 한국의 고궁 경복궁 자경전4 서쪽에는 주황색의 벽돌로 쌓은 꽃담이 있는데 예쁜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한국의 옛사람들은 아름다운 꽃에 나비가 찾아드는 장면을 보고 행복을 찾아 날아오는 나비로 보았다.
선덕여왕이 중국 당나라 태종(太宗)이 보낸 모란 꽃씨와 모란의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그 꽃이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씨앗을 심고 보니 향이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선덕여왕의 총명함을 의미하였다(조희웅, 2018). 나비는 총명함, 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나비에 관한 여러 가지 속신(俗信)이 있는데 흰나비가 이른 봄에 집 안으로 들어오면 그 집에 초상이 난다고 하고, 흰나비부터 보면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고 하여 흰나비를 죽음, 영혼과 관련 지어 표현하였다. 또한, 호랑나비는 좋은 일이 생기는 것으로 예견하였다. 아침에 호랑나비를 보면 그 날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고, 이른 봄에 호랑나비를 보면 그 해 운이 좋다는 말이 있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나비가 불 속에 날아드는 것을 보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하며, 나비를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눈이 멀게 된다고 믿기도 하였다(김성배, 1981). 나비를 통해 앞일을 예견하고 어떤 신비스러운 영혼의 힘을 가진 곤충으로 보았다.
한국 전통 그림에서도 나비와 꽃이 함께 있는 것들이 많은 것은 미(美)의식을 이루는 음양(陰陽)적 세계관이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비는 항상 꽃과 함께 있는데 나비의 동적인 면은 양(陽)을 나타내며 남자와 연관이 있고, 꽃의 정적인 면은 음(陰)을 나타내며 여자와 연관된다. 이 둘이 어울리는 모습은 남녀의 사랑으로 해석되며, 조화의 상징으로 본다. 또한, 자연 그 공간 자체를 음양의 조화로 보는 측면이 있다(최민성, 2005). 꽃과 나비가 함께 표현되면서 동양 문화권에서는 나비가 연인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으며, 부부간의 금슬이 좋음을 나타내기도 한다(이연순, 2010). 전통 문양에서 나타나는 나비는 새로운 창조를 의미하며 영원함과 변신을 의미하기도 한다(조휴진, 2008).
그림의 소재나 작은 병풍들에 나비·꽃·새 등이 자주 등장하였다. 꽃을 여자로 비유하고 나비는 남자에 비유하였다. 그림에 꽃과 나비의 의미는 향기로운 꽃 속에서 평생을 정답게 살기를 바라는 것으로 부부애를 의미한다(조휴진, 2008). 같은 맥락에서 “꽃 본 나비 담 넘어가랴” 라는 속담이 있고, “꽃 본 나비 불을 헤아리랴” 라는 속담은 남녀의 깊은 사랑에 빠진 것을 빗대어 표현하였다(이승훈, 2009). 미술품이나 소품, 가구 등에 나비가 장식으로 자주 사용되면서 나비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었으며(조휴진, 2008) 다른 동·식물들과 함께 그려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의 나비는 부귀영화의 기쁨, 장수와 자손 번성의 기쁨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으며(권민형, 송인정, 박천호, 2012) 나비 두 마리가 함께 있을 때는 행복한 결혼을 뜻한다(Miranda, B. M., & Philip, W., 2010).
한국영화 <국가대표> OST로 쓰인 러브홀릭스의 ‘버터플라이(butterfly)’ 라는 곡이 있다. 영화 속에서 많은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는 장면을 노래의 가사와 함께 보여주었다. 힘들고 지치는 과정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내적 성장의 과정을 보여주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최윤경 (2003)은 성충에서 나비가 되는 모습과 한 살이 하는 나비의 과정을 자연의 한 일부분으로 보고 순환적 법칙을 따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한 편, 애벌레에서 나비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두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후에 오는 ‘뜻 깊은 완성’ 에 비유하기도 하였다(주성희, 2012).
한국에서 나비는 다양한 소품, 미술품과 전통 문양에 활용되며 많은 선행 연구와 더불어 나비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나 관련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본 연구사례의 내담자는 의뢰당시 13세 여중생으로 ADHD5진단을 받고 약물을 복용한 경험이 있었다. 학교생활에서 잦은 멍 때림, 무기력하고 느린 행동, 또래 및 교우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고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모는 무기력하고 우울감이 있어서 내담자는 모성적 보호 부족을 느끼고 있다. 총 10회기의 모래상자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주 나타난 나비의 심리학적 상징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림 3의 4회기 상자는 사막에 크리스마스가 펼쳐지고 남자아이가 나무 위에 나비장식을 한다. 상자의 중앙에 나무 위로 나비를 정성스럽게 올려 중심을 잡아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나비는 따뜻하고 포근함을 준다고 말한다. 눈 덮인 집과 나무 위에 나비를 올려놓아 내담자의 추운 심리상태를 녹이듯 나비를 통해 따뜻한 봄을 맞이하는 듯하다. 모래놀이는 내담자가 느끼는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작품 속에 표현하는 것이다. 이번 작품에는 어린 소녀에서 소녀로 나아가는 과정의 여성성을 키워나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내담자의 표정이 전보다 밝고 편안해졌다. 요즘은 조금 더 일찍 자고, 아침에는 모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학교에 간다고 한다.
그림 4의 7회기에는 손도장을 5개 찍고 나무 위에 새와 나비를 올려놓았다. 교복 입은 여학생은 ‘나비가 참 크다’ 는 생각을 하는 중이라 한다. 나비가 크다고 표현하는 만큼 내담자의 에너지가 커짐을 예측하게 한다.
7회기는 많은 식물들이 등장하여 생동감을 더해준다. 아이가 손도장을 감상하는 것과 교복 입은 아이가 나무 위에 나비를 바라보는 것은 내담자의 심리적 영혼을 살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내담자는 손바닥을 찍는 작업으로 자기(Self)상을 강조하였다. 일상에서도 자신을 조금씩 표현하고 드러내며 자아를 성장시켜간다. 작품을 만들고는 학교에서 하는 동아리활동에 대해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전한다. 이제는 학교에 갈 때 혼자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다고 한다. 일상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 이야기를 통해서도 느껴진다.
그림 5의 8회기(좌)는 가운데 큰 나무가 있는 봄날의 대공원으로 계절은 봄이지만 이곳에는 여러 계절이 다 있다고 설명한다. 중앙의 나무위에 나비가 올려져 있다. 상자에 중심을 세우며 만다라를 꾸민 것을 Self를 표현한 장면6 으로 보기도 하는데 8회기 작품에서는 나무 위에 나비를 올려서 Self를 강조한 것으로 느껴진다. 내담자는 주말에 가족들과 도시로 쇼핑을 갔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도구를 사고 맛있는 것도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동생과 가끔 게임을 하거나 장난을 치며 놀아준다고 한다. 자신의 아빠는 유치하지만 잘 놀아주는 사람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모래놀이작품에서 내담자의 심리적 에너지가 커지고 자아가 강화되는 장면을 보인 것처럼 현실에서도 변화를 보인다. 활동적인 측면과 자기표현이 늘었고 가족관계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표현하고 있다.
그림 5의 9회기(우)는 동물들을 위한 숲 속의 놀이터를 꾸몄다. 동물들은 자유롭게 드나들며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어서 기쁘다고 표현한다. 중앙에 우물이 있고
나무위에 새와 나비들을 놓은 것은 무의식을 깨어내듯 하며 숲 속의 활기찬 모습을 강조하는 듯 보인다. 내담자는 학교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인데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동아리활동 때문에 더 바빠졌지만 친구들이 자신의 그림을 칭찬해 줄 때는 기분이 좋고 선배언니들과 친해져서 학교가 재미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내담자의 말이나 행동이 그 또래의 아이들처럼 자연스러워짐을 느낀다.
모래놀이를 통해 자아를 강화하고 재구축하는 작업을 해 나가며 심리적 성장을 촉진시켜간다.
본 연구사례의 내담자는 이후 학교생활에서 또래관계 맺기가 긍정적으로 변화되었다. 모래상자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주 등장한 나비는 무의식을 의식화하면서 내적인 성장을 해내는 의미로 애벌레가 나비로 변화되듯 어린 소녀가 소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 듯하다.
결 론
나비는 전 세계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곤충으로 그 색깔이 다양하고 화려하며 매우 아름답다. 봄의 전령사로 불리며 새 출발과 따스함을 전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추위를 이겨내기에 환경이 좋지 않았을 것이므로 봄을 맞이하는 기쁨이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러기에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봄을 알려주는 나비는 기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불교에서는 죽은 뒤 그 영혼을 나타내는 것으로 윤회사상으로 보았으며,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는 뜻으로도 표현되었다. 기독교에서는 어린 예수와 나비를 연결하여 부활, 삼위일체로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나타나는 나비는 부활과 순수한 영혼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그리스 신화에서 미의 여신 프시케는 나비, 영혼이라는 뜻을 가지며 프시케와 에로스와의 사랑으로 낳은 아기를 통해 기쁨과 진정한 행복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프시케가 나비처럼 많은 역경의 시간을 보내고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데 여기에서 프시케는 자기실현의 상징으로(조휴진, 2008) 볼 수 있다. 아일랜드 신화에서는 나비가 순수한 영혼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나비가 된 유래>와 <양산백전>, <황나비 무덤>에서 나비는 환생하여 함께 살았다는 내용으로 환생, 부활을 표현하였고, 중국 민담 <호접지몽>에서 나비는 자율적이고 조화의 상징으로 보았다. 신화, 설화, 민담에서 나비는 행복, 기쁨, 부활, 조화로움을 상징함을 알 수 있었다.
한국문화에서는 나비를 통해 지혜로움과 총명함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꽃과 나비의 어울림을 남녀의 사랑, 부부간의 금슬 좋은 것으로 보면서 조화로움을 강조한다.
나비를 모티브로 한 예술작품에서 나비의 움직임과 생태과정을 인간사로 비유하여 인내와 고통, 내면 성장과 자아실현의 의미로 보았다. 한국문화에서 나타나는 나비는 행복, 사랑, 내적 성장의 상징을 갖고 있었다.
모래놀이 작품에 나타나는 나비는 내담자의 추운 심리상태를 녹여내듯 따뜻함과 포근함을 강조하고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나타내었다. 활기차고 내적인 성장을 해내는 활동력을 나비를 통해 보여주면서 모래놀이 작품에서는 애벌레가 나비로 변화하는 과정처럼 어린 소녀가 소녀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가 있었다. 나비와 더불어 한 단계씩 내적 성장을 해 나가는 모습을 작품을 통해 보여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비가 알에서 성충이 되는 모든 과정을 성장의 측면으로 볼 수 있으며 나비의 성장과정은 아기-어린 소녀-소녀로 변화하는 과정과도 흡사하다. 나비는 여러 상황에서 환경을 받아들이고 숙고하는 시간을 거쳐 내면의 성장을 해낸다.
본 연구에서는 나비가 갖고 있는 의미를 부활과 순수한 영혼의 상징, 행복과 기쁨, 조화로움의 상징, 사랑과 내적 성장, 자아실현의 상징을 가지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모래놀이 작품에서도 나비는 내적 성장을 해 나가는 모습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하여 연구자는 모래놀이 작품에 나타나는 나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에 대하여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 나비를 생각하고 연구하게 된 것은 ‘저자 안에 숨겨진 가능성을 찾아내고 한 걸음 성장하며 괜찮은 상담자가 되고 싶다.’ 는 초심을 되새기는 의미라 생각한다. 상담자로서 마음 속 깊이 중심 잡아가며 내적 성장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우연 같은 운명’인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을 경험한 것이다.